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결과가 좋으면 수단은 상관 없다'는 본심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뜻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으면 원칙이나 설득으로 해결하기보다 힘으로 제거해버리는 쪽을 택한다.
민주당 귀책으로 치러지는 내년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엔 민주당 당헌상 후보를 낼 수 없다. 이에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당 대표 시절 만든 당헌 자체를 바꾸는 쪽을 택했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연내 출범이 국민의힘 반대에 가로막히자, 공수처법을 수정해 야당의 반대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연말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공수처법을 국회에서 처리한 지 1년도 안돼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깨고도 국회 전체 의석 300석 중 180석(현재 174석)을 얻었다. '개헌 빼고는 뭐든 할 수 있는' 의석수다. 민주당은 그 힘을 굳이 아끼지 않는다. "민주당이 이기면 그만이라는 학습 효과에 취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31일과 1일에 걸쳐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을 위한 전체 당원 투표를 실시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ㆍ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되면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서다.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이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의혹으로 실시된다.
민주당은 2015년 ‘정당으로서 후보 공천에 책임을 지겠다’며 개혁적인 당헌을 선보였다. 그러나 서울ㆍ부산시장을 야당에 내주면 2022년 대선도 흔들린다는 계산이 서자 표변해 당의 헌법 격인 당헌을 바꾸기로 했다. “후보 공천으로 시민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이낙연 민주당 대표)라는 명분을 대면서다. 공당의 책임이 '약속 지키기'가 아닌 '어쨌거나 선거 승리'에 있다는 게 민주당 논리인 셈이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해 제정한 공수처법은 야당의 견제·비토권을 명시하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는 공수처장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추천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공수처장 추천위원 2명은 국민의힘 몫인 만큼, 국민이힘이 제동을 걸면 공수처장을 낼 수 없고 공수처 출범도 지연된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 친위 기관'이라는 반대 논리를 허물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국민의힘이 이 조항을 앞세워 공수처 출범을 막자, 민주당은 해당 조항을 '공수처장 추천위원 7명 중 5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로 바꾼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의 의견은 아예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여망이 담긴 공수처 출범 지연을 이제 끝내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것은 공수처법 개정에 속도를 내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수당이 ‘힘의 논리’로 국회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여야 합의라는 민주주의 정신에 배치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1일 “국회는 여야 협력으로 운영돼야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도 법을 지킨다”며 “민주당은 너무도 당당하게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유신정부에서 집권 여당이 청와대의 보조 수단으로 기능하던 때가 생각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결과 우선주의'와 '지지층 우선 정치'에 매몰돼 '반민주'의 길로 빠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총선 당시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처럼, 민주당은 열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른 최근 선거에서 항상 이겼다”며 “여론이 안 좋은 것은 잠시이고, 결과가 좋으면 된다는 학습 효과가 생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