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설명회요? 애들 한 명이 아쉬우니 인맥 동원해 강원도 고등학교까지 가기도 했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땜에 많게는 30%가량 줄였어요. 수도권 대학들이 부산 내려와 설명회 많이 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 불안합니다.”
부산의 A사립대 B입학처장은 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올해 수시 경쟁률 안정권인 6대 1이상 대학은 부산에서 부산대, 부경대, 동아대 세 개뿐”이라며 “4년 전부터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이 줄 거라는 조짐이 보였지만 예상보다도 타격이 빨리 왔다”고 말했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대학 입학정원이 수험생 숫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방대학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 2021학년도 대학 입학정원은 48만866명,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는 49만3,433명으로 통상 10%내외 수능 결시율을 보였다는 점에서 지원자가 입학정원 규모를 밑돌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지방 주요대학들마저 대학 입학정원이 수험생 규모를 넘어선 ‘역전현상’을 앞둔 데다 해가 갈수록 수도권 대학 합격선만 높아지면서, 등록 미달사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대구 C사립대 D입학처장 역시 “올해 대구지역 대학 수시 지원 인원이 지난해 대비 평균 10~15% 감소했다. 20~30%까지 떨어진 대학도 수두룩하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방대 지원자 수가 급감하는 이유는 학령인구 감소에서 비롯된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올해 7월 발표한 보고서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안’(지방대학 육성방안)에 따르면 2021학년도 대입 입학정원을 유지할 경우 입학가능인원이 내년에는 7만8,000여명, 2024년에는 10만8,000여명 부족하다.
여기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세종시 고등학교 상당수가 ‘과밀학교’인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 지역 수험생 규모가 인근 대학 모집인원보다 많다는 사실은 일부 다른 지역은 이미 오래전 수험생, 모집인원 간 ‘역전현상’을 보여왔다는 방증이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교육통계 등을 토대로 분석한 ‘시도별 대학 모집인원 대비 학생수 변화’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 중 충남, 대전, 강원, 충북, 부산, 경북 등 6개 지역은 지난해 대학 모집인원(14만738명)이 고3 학생수(12만3,475명)를 넘어섰다. 이 편차는 올해 고3이 10만7,151명, 2024학년도에 입시를 치를 올해 중3이 9만9,488명인 점을 감안할 때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대학이 체감하는 현실은 수치보다도 심각하다. 2017년 동아대와 경성대 등 부산의 대학들은 무용학과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부산 예술고등학교들의 정원 미달 사태가 그대로 대학까지 올라온 것이다. B입학처장은 “올해 재수생을 포함해 부산 수험생들이 단 1명도 타도시로 가지 않고 부산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는다고 가정해도 부산지역 전문대, 4년제 대학 모집정원의 59.8%에 불과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면서 “나머지 학생은 외부에서 유입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 회장(가톨릭관동대 교수) 역시 “강원지역 대학 학생 7할은 수도권 출신”이라며 “지역 출신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입학정원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역대학들의 ‘외부 출신’ 학생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역거점국립대에서 받은 ‘대학별 합격자 출신 지역’을 보면 2013년 강원대 합격자 9,527명 중 강원 출신은 3,472명으로 36.4%였는데, 2020학년도에는 24.6%로 줄었다. 2020학년도 강원지역 합격생은 1,657명으로 경기(2,277명)와 서울(1,776명)보다 적다. 전북대 역시 2020학년도 합격자 1,643명 중 전북 출신은 541명으로 경기(338명)와 서울(240명) 합격생을 합친 것보다 적었다.
1986년부터 입시업계에 종사한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 소장은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시작됐다”라고 기억한다. 대학졸업 후에도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지방 의대 합격선이 서울대 이공계열을 앞질렀고, 의대‧치대‧한의대 계열을 제외한 다른 학과는 반대로 서울지역 대학으로 쏠림현상이 가속화됐다. “연구개발은 ‘수도권’이 하고, 공장과 생산기능은 ‘지방’이 맡고 있는 우리나라 제조업 시스템에서”(지방대학 육성방안) 외환위기 후 제조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취업이 어려워졌고, 그 타격이 지방대 회피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교원 선발 규모가 축소되면서 인문계열 최상위 학과로 꼽힌 지역거점국립대 사범대학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정부 교육 정책이 지방 소외를 더 부추긴 지점도 있다. 대구 E대학 관계자는 “대학구조개혁평가라는 명목으로 정원을 줄이려던 교육부의 정책실패 결과”라며 “지방대, 전문대는 이 정책에 맞게 정원을 줄였지만 일부 수도권 대학들은 정부지원금을 적게 받겠다며 정원을 줄이지 않거나 인원을 조금 줄였고, 그만큼 서울로 간 학생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지방대학 육성방안’에 따르면 2013년 대학 입학정원은 56만 명에서 2018년 50만명으로 6만명(감축률 10.9%) 줄었는데, 감축률은 4년제 대학(8.1%)보다 전문대학(15.5%)이, 수도권(7.0%)보다 지방(13.2%)이 2배 높았다. 특히 서울 지역 대학 감축률은 3.5%로 전국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다수 입시전문가들은 지방대 합격선이 급격히 낮아진 시점을 “수시 전형 확대 이후”로 꼽는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예전 정시 위주 선발 방식이었을 때는 대학 학과별 합격선이 명확했고 이 기준이 대개 매년 반복됐다”면서 “(정부 수시 확대정책이 나온) 2005년 전후 합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수시, 특히 학종 선발 비율이 서울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늘면서 수능이나 내신 성적이 더 낮은 학생이 더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수도권 대학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소장 역시 “입시제도가 수험생들의 ‘탈지방화’를 가속화시킨 건 사실”이라며 “지방대학이 주로 내신 위주로 수시모집을 하는 반면 서울 주요대학은 학종 모집 비율이 높다. 상위권 학생은 당연히 서울, 중위권 학생도 내신보다 대외 활동 이력에 자신 있다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대 학부생 모집(1,500여명) △공공의대 설립(400명) △광주 한국전력 공과대학교(한전공대) 설립(400명) 등 정부의 각종 입시정책은 ‘지방대 소멸’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B입학처장은 “이들(한전공대 등)대학의 모집인원이 연간 2,000명 이상인데, 의대·약대 합격선을 1등급이라고 본다면 당장 내년부터 서울대‧연고대에 합격 자리가 빈다는 얘기”라며 “서울 중상위 대학 합격자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결국 지방대학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걱정했다.
대학관계자들은 감소하는 학령인구에 맞춰 대학체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대학 수익을 위해 갈수록 늘리는 ‘정원 외 입학’ 규모를 입학정원 내로 개편해 수도권 대학의 확장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2021학년도 대학 입학정원 외 모집정원은 7만4,900여명, 전체 모집정원의 13.5%에 달한다. 학령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운영난 겪는 대학들의 ‘퇴로’를 열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D입학처장은 “현재 사립학교법은 설립자가 대학을 없애면 무일푼이 되게 하는 법”이라며 “땅값의 절반이라도 보전해줘야 스스로 문 닫을 고민을 할텐데, 현재는 정원의 10%가 재학해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민수 입학처장협의회 회장은 “올해, 내년이 지방대학 사활의 기로다. 학생들에게 졸업 후 비전을 확실히 보여줄 대학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정부도 지역대학의 의견을 보다 폭넓게 수렴해 비전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