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아닌 자격증 된 변호사... 진출 경로 다양해졌다

입력
2020.11.02 04:30
12면
<27>  변호사 3만명 시대, 신참들의 속사정

편집자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변호사가 로펌에서 송무만 전담하던 시대는 지났다. 요즘은 사내변호사로 들어가 일반 직장인과 같은 생활을 누리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자격증을 발판으로 행정 외교 정치 창업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드는 변호사들이 많이 늘어났다.

법조계에서는 새로 법조 시장에 유입된 변호사들의 진출 경로가 다양화되는 원인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을 꼽는다. 합격하기면 하면 거의 법조인으로 남던 과거 사법시험 때와 달리, 변호사 시험 도입 이후 변호사가 직업이 아닌 '자격증화' 하면서 일하는 영역이 훨씬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내변호사 등 7년 간 다양한 직역에 몸담았던 한 변호사는 “로스쿨 동기들만 봐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친구는 외교부 사무관으로 가서 유엔에 자주 드나들고, 입법에 관심있던 친구들은 로펌 경험 없이 국회의원실에 바로 들어가는 경우도 봤다”며 “애시당초 송무라는 전통 직역만 생각하고 로스쿨에 입학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쉽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청년변호사들 중에서는 서비스업이나 정보통신(IT) 산업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기를 살려 판례 검색 사이트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고, 평소 관심사를 반영해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을 만든 사례도 있다. 사내변호사 중에서도 법무팀에 소속되지 않고 상품 서비스 개발이나 투자심사역 등 자기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이들은 “선례 없이 새로운 분야에 처음 도전하다 보니 조언을 얻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올해 2월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청년변호사들과의 좌담회에서도 “청년변호사의 근무 실태를 정리해 참고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취업준비를 하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변호사들이 다양한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구상을 발표했던 조수한(35) 변호사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변호사들이 많은데 기록을 남기지 않다 보니 후배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청년변호사들의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판사와 검사를 일부 ‘법조 마니아’들의 선택지로 보는 시선까지 생겼다. 검사가 맡는 형사사건을 ‘험한 일’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판사가 되려면 2022년부터 7년, 2026년부터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오모(33)씨는 “우리가 졸업 후 판사가 되려면 10년 경험이 필요하다”며 “그 때쯤이면 민간 기업과 판사 간의 연봉이 크게 차이나는데다, 지방을 순회해야 하는 판사의 경우는 정말 희망하는 사람만 지원하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주영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