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자 클럽이자 휴식처...배낭여행자가 꿈꾸는 집

입력
2020.10.31 10:00

<149> 기억에 남는 세계의 호스텔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시대, 집은 어떤 의미일까? 외부 이동마저 금지하는 일부 나라에선 철저한 ‘감옥’이겠다. 생각을 전환해보자. 거주 공간이라는 일차원적 사고를 벗어나면 집은 여러 기능과 의미를 담고 있다. 사용하기에 따라 일터이자 식당이요, 헬스클럽이나 놀이터다. 여행을 하며 전세계 수백 개의 숙소를 집으로 삼았다. 이곳이 만일 우리 집이라면? 내 손으로 감염 사태를 잠재울 순 없지만, 나의 집은 변할 수 있다.


그 도시의 축소판, 모로코 마라케시의 '이퀴티 포인트 마라케시 호스텔'


무질서한 도시 마라케시에서 안전으로 무장한 숙소 ‘마라케시’. 이곳엔 열고 닫힘의 미학이 있다. 자마 엘프나 광장 뒤 비좁은 뒷골목을 들어가다가 완고히 닫힌 문에 숨이 턱 막힌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면 갑작스레 시야가 높고 넓게 트인다. 이 천상의 라운지에서 ‘ㅁ’자로 뚫린 복도를 따라 내 방 찾기에 돌입한다. 짐은 내팽개치고 탐험가가 된 것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가구, 쿠션, 거울 등 디테일한 장식에 홀리듯 끌리다 보면, 마라케시의 붉은 기운이 한 폭의 그림으로 들어오는 옥상에 닿는다. 실내 정원이 있는 모로코 전통 주택을 ‘리아드’라 한다. 절제된 색상과 화려한 패턴의 인테리어, 거기에 능수능란하게 손님을 배려하는 스태프의 솜씨를 더해 리아드가 호스텔로 재생된 숙소다. 만일 이곳에 갇힌다면, 공간이 가진 디테일을 탐구하며 모로코의 깊은 역사를 숙지하는 나날을 보내겠지.




예술과 편리의 시소게임, 포르투갈 리스본의 '리스본 라운지'


때로는 숙소가 여행할 도시를 결정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떤 숙소는 한 나라의 인상을 바꾸는 필터다. 숙소가 문화요 작은 도시이자 우주라는 철학을 지닌 듯한 '리스본 라운지' 호스텔. 공간 구성을 보면 운영자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된다. 첫째, 주인은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녀본 사람일 거다. 공동 침실과 샤워실, 거실 등은 일반 호스텔과 같은 시스템이지만 여행자가 겪을 불편을 모조리 제거했다. 침대마다 개인 플러그를 갖춘 1세대 호스텔이다. 게다가 2층 침대의 층간이 높고 1.5배에 달하는 매트리스 사이즈로 숙면을 유도한다. 방은 댄스플로어로 삼아도 좋을 만큼 넓다. 자체 무료 투어로 생채기가 난 포르투갈의 역사 이야기도 들려준다. 둘째, 주인은 예술 업종 종사자이거나 마니아였을 거다. 블루와 화이트 컬러의 노르딕 스타일 인테리어로 잠시 북유럽을 꿈꾸게 한다. 수집하고 싶은 예술 안내 책자가 수시로 업그레이드됐다. 공간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다. 나의 집은 어떠한지 반성하게 됐다.




사소한 유머가 세상을 구한다, 멕시코 케레타로의 '쿠쿠루쿠'


호텔이자 호스텔이다. 그린(Green) 컨셉트를 표방하며 세계의 환경을 고민한다. 뭐니 뭐니 해도 멕시코에서 가장 깨끗하기로 마음 먹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3가지 색이 공간을 조화롭게 나눈다. 벽면은 온통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졌다. 살아있는 식물을 배치한 구석구석은 초록색, 나머지는 나무문과 벽돌을 활용한 황토색이다. 모던한 분위기에 빈티지한 가구를 배치해 취향이 별난 여행자에게도 만족감을 줬다. 벽면의 그림도 감복할 만하지만, 메시지를 보며 자주 웃게 된다. “불을 꺼봐, 그리고 영웅이 되는 거야” “우리는 이미 하고 있어. 너는 어때?” 등은 강요가 아니라 유머를 섞은 권유다. 멕시코 중남부 도시, 케레타로 시내를 360도 파노라마로 전망할 수 있는 옥상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생각했다. 그렇지. 강퍅한 세상에서 유머는 자신을 구하곤 하지.



소통이란 이런 것이야, 이란 테헤란 '헤리티지 호스텔'


영어가 아닌 자국어를 보유한 국가일수록, 온라인 정보에 한계가 있는 나라일수록 호스텔은 잠자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관광 안내자이자 통역사로, 위급한 상황에서는 도움을 주는 친구여야 한다. 불가능한 일을 되게 하는 구원자랄까. 테헤란의 숙소가 그랬다. 각 방은 잠만 자라는 듯 비좁다. 눕는 일 외에 다른 용무는 볼 수 없다. 그 대신 공적인 공간을 확 넓혔다. 당연히 여행자끼리 소통이 일어난다. 아침 식사 때 긴 테이블에 함께 앉아 서로의 눈곱 이야기로 농담도 던지고,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은 이의 등을 토닥거리기도 한다. 잠자리를 빼면 모든 게 ‘빵빵’하다. 빵빵한 에어컨, 빵빵한 수압, 빵빵한 와이파이가 갖춰져 있다. 여행 당시 라마단 기간이라 이곳에서 비자발적인 자가격리를 한 바 있다. 이란도 배달의 민족임을 알게 됐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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