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브이로그(VLOG·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방송국 PD가 만들었다고요?"
지난 6월 문을 연 유튜브 채널 '오느른'에 잊을만 하면 달리는 댓글이다. 지상파 PD가 웬 유튜브를, 어쩐지 영상 때깔부터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이라더니, 하는 감탄과 함께 나오는 반응이기도 하다.
이 PD의 이름은 최별(31). 'MBC 시사교양 PD'에서 'MBC 공식 1호 유튜버'로 변신한 인물이다. '오느른'은 최 PD가 전북 김제의 115년 된 폐가를 사서 하나 둘씩 손봐가며 터 잡아나가는 시골살이 과정을, 10분 정도 영상으로 선보이는 연재물이다. 여기에 붙은 부제는 'MBC PD의 리틀 포레스트'.
그러면 또 이런 댓글이 붙는다. "MBC가 사준 집 아니야?" 아니다. 최 PD가 제 돈 4,500만원을 털어 샀다. 세컨 하우스로 마련한 생애 첫 주택인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최 PD도, MBC도 알지 못했다. 영상 20여편을 올리는 사이 구독자 21만명, 누적 조회 수는 1,182만회를 넘어섰다. 슈퍼스타 펭수가 먼저 출연을 제의할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시작은 무계획이었다. 최 PD는 "솟구치는 퇴사 욕구에 진짜 충동적으로 집부터 샀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고민을 시작했다. "이걸로 뭘 할까 많은 고민 끝에 콘텐츠로도 가치가 있겠다 싶어 회사에 '오느른' 기획안을 내게 됐어요." 마침 그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D크리에이티브센터로 넘어온 참이었다. MBC가 작년 10월 이 조직을 신설하면서 진행한 사내 채용에 최 PD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지난 1월 시사교양 PD 중 유일하게 자리를 옮겼다.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로서 유튜브에 정면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작년에 100부작 다큐 '1919-2019, 기억.록'을 크로스미디어로 기획해 유튜브에도 올렸는데 반응이 없더라고요. 좋은 콘텐츠가 외면 당하는 현실에 회의감도 들고, 대체 유튜브는 방송하고 뭐가 다르나 싶더라고요."
쉽진 않았다. 웹예능 아이디어는 냈는데,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지며 엎어졌다. 홧김에 김제 집을 산 건 그 때, 지난 4월 무렵이었다. 김제 쪽에 따로 연고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진 돈에 맞춰 집 하나 구하려다보니 김제까지 흘러들었을 뿐이다. 집과 인테리어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데다 브이로그도 즐겨봐온 터라 자연스레 '오느른'을 떠올리게 됐다. 이를 위해 최 PD는 D크리에이티브센터 안에 새로 생긴 M드로메다스튜디오팀으로 소속을 다시 옮겼다. 그렇게 '오느른'은 MBC 공식 유튜브 채널로 지난 6월 선보였다.
일주일에 2, 3일 서울에서 내려온 카메라 감독이 촬영하면, 이걸 최 PD가 넘겨받아 편집한 뒤 금요일 올린다. TV로 옮겨도 손색 없을 고퀄리티가 목표다. 5분짜리 첫 회를 편집하는 데는 3주가 걸렸다고 한다. 'B급 성향', '빠른 편집'으로 대표되는 기존 유튜브 콘텐츠와는 다르다. 풀색, 하늘색, 흙색 등 자연의 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눈 밝은 이들은 금세 이게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브이로그인 줄 알았더니 한 편의 힐링 다큐"라는 반응이 줄이었다.
'오느른'을 향한,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은 최 PD와 MBC를 또 다른 고민에 빠뜨렸다. '무계획'으로 시작한 만큼 '오느른'의 다음 스텝을 어떻게 가져갈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올해야 이렇게 간다 해도, 내년 한해 어찌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회사도 '오느른'을 어떻게 키워 나갈지에 대해서 꽤 조심스러운 편이에요. 구독자가 늘면서 다양한 제안들이 오는데, 콘텐츠 방향을 해치는 현물 협찬이나 광고는 안 하는 정도까지만 정리가 된 상태예요."
최 PD는 '오느른'의 성공에도 자신을 '시사교양PD'로 규정했다. "굳이 장르를 따진다면 꾸밈없이 전달하고,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오느른'도 교양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이걸 할 수록 결국 '나는 다큐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시사교양 PD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요."
하지만 동시대성을 잃고 홀로 무겁기만 한 다큐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어 소통 방식은 달라졌지요. 다큐가 가져야 할 진중함과 무게도 있겠지만 이젠 주제의 다양성이나 포맷 실험도 생각해볼 때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