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 하띤성의 끼러이 마을 주민들은 빗물이나 우물물을 더 이상 먹지도 쓰지도 않는다. 2014년 마을 인근에 붕앙1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된 이후 물 색깔이 확연히 변한 데다, 구토를 하는 등 병에 걸린 아이들이 갑자기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주민들은 한 달 생활비의 3분의1이 넘는 100만동(5만원)을 생수 구입에 사용하고 있다. 요즘엔 시름시름 병을 앓는 어른들도 부쩍 늘었다. 지역 보건소 집계를 보면 2017~2018년 심혈관 및 뇌졸증 환자가 105명이나 나와 14명이 숨졌다.
이들은 “2016년 붕앙1 옆 포모사 제철소가 독성 화학물질을 무단 배출해 물고기가 폐사했을 때보다 지금의 공포가 훨씬 크다”고 토로한다. 끼러이 꼬뮌(지역공동체)은 지원을 받아 주민들을 최대한 빨리 이주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붕앙1도 모자라 한국 업체가 건설하는 붕앙2 발전소까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주민 A씨는 28일 “이미 활력을 잃은 농촌 마을에 왜 더 큰 고통을 주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당신들 나라(한국)라면 돈벌이가 된다고 ‘죽음의 땅’에 석탄발전소를 짓겠느냐”고 반문했다.
1,200메가와트(MW) 용량의 붕앙2 발전소는 한국전력(한전)이 삼성물산ㆍ두산중공업과 함께 건설하고 운영도 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만 22억달러(2조6,000억원)로 2025년 1월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중국 중화전력공사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석탄발전 규제 흐름을 고려해 사업에서 철수하자 지분을 인수, 이달 5일 붕앙2 투자 안건을 이사회에서 최종 의결했다.
한전은 세계 석탄발전산업 1위인 중국마저 철수한 붕앙2 사업을 강행하는 이유로 막대한 수익 보장을 꼽는다. 베트남 경제가 한창 성장하는 만큼 산업전력 수요도 늘어날 게 자명한 데다, 25년간 발전소 운영권도 확보해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논리다. 환경오염 우려는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초초임계압 기술과 친환경 설비로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중국과 미국이 그걸 몰라서 사업에서 발을 뺀 것일까.
한전의 주장은 우선 수익성 예측에서부터 글로벌 분석기관과 어긋난다. 한전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붕앙2 발전의 사업타당성을 0.523으로 책정한 점을 강조한다. '사업성 있음'(0.5) 기준을 충족한 만큼 남는 장사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 분야 전문 연구기관 ‘에너지포스트’의 판단은 다르다. 기관은 향후 아무런 리스크가 없는 석탄화력발전의 평균 기대수익률을 4.3%로 예측한 뒤 석탄발전에 부과되는 온실가스(탄소) 가격이 톤당 2달러만 올라도 수익률 6.2%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1달러가 더 오르면 수익률은 무려 12.8%까지 곤두박질칠 수 있다.
탄소가격이 고정되고 발전소를 20년 동안 운영하는 가안을 적용해도 기대수익률은 1.3%에 불과하다. 에너지포스트는 30년이 되더라도 수익률은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치는 3.3%에 그칠 것으로 봤다. 하지만 탄소가격은 친환경 정책 확산 여파로 상승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한전의 운영 기간은 25년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계산해도 평균 기대수익률을 맞추기 어렵다는 얘기다.
현지 전문가들도 한전의 투자에 의아해 하고 있다. 단적으로 베트남 중앙정부는 지난해 ‘대체에너지’를 통한 전기수급 안정화 결의안(NO. 55-NQ)을 발표했다. 결의안에는 10년 후 베트남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5%를 줄이고, 2045년에는 최대 20%까지 감소시키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한전의 발전소 운영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에 베트남은 최근 유엔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9% 더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목표 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 베트남이 지난 10년 동안 집중 육성한 대체에너지 개발 사업은 본 궤도에 오른 상태다. 실제 국제금융 싱크탱크 ‘카본 트래커’는 올해 베트남 태양광 발전 생산 단가가 석탄화력보다 낮게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풍력발전 역시 내년에는 석탄화력에 가깝거나 더 저렴해질 것으로 보인다. 붕앙2 완공 이전에 베트남 대체 에너지 산업이 확실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관측이다.
‘청정 발전’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 기존 에너지산업 운영 주체에 친환경 설비 구비 등을 요구하며 온실가스 감축 요구치를 충족시키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한전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대규모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지방성(省)들 역시 중앙정부 구상에 적극 호응하기 시작했다. 남부 칸호아성은 21일 홍수 피해를 유발하는 수력발전사업 4개를 전격 해제했으며, 하띤성은 석탄발전을 장기적으로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하는 내용의 하부 시행령을 추진할 방침이다. 베트남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중앙정부 결의안이 지방에 잘 투영되지 않는 특성을 감안할 때 지방성의 움직임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석탄발전도 결국 주무 감독청인 지방정부의 강력한 변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 환경단체들은 “기술 역량으로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는 한전 측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붕앙2의 이산화황(SO2) 배출 허용기준이 한국보다 대략 4배나 높고, 미세입자 물질(PM)은 8배나 더 뿜어대도 규정 위반이 아니다. 가뜩이나 수익 전망도 애매한 상황에서 초초임계압같은 까다로운 기술을 적용하겠느냐는 의심이다. 석탄 배송 시 환경오염과 폐기물의 안정적 처리 등 해묵은 논란 역시 여전하다.
국·내외에서 논란이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2021년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 중립'을 전격 선언했다. 전날에는 삼성물산이, 같은 날 한전도 "붕앙2 사업 이후 해외 석탄화력발전산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에 동참했다. 이미 진행된 사업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제2의 붕앙2 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전은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환경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도 약속했다. 한전 측은 "발전소 부지 인근 주민들과 수차례 간담회를 가지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며 "베트남 정부와 공문을 통해 시행키로 확정한 초초임계압 설치도 약속대로 진행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익성 논란에 대해서도 "정부 보증이 있어 25년의 운영기간 중 베트남 측 사유로 사업이 정지되면 나머지 요금을 다 수령할 수 있다"며 "환경오염 최소화와 수익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해 '한국은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