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스포츠에도 큰 애정을 쏟으며 한국스포츠 발전에 힘썼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부에서 운동을 했던 이 회장은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21∼24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열었다. 이 회장 재임 당시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 7개, 아시안게임 29개, 세계선수권 4개 총 40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 회장이 한국 레슬링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부한 금액만 28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그레코로만형 금메달리스트 김영일씨는 25일 “양정모 선배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꾸준히 한국 레슬링이 금메달을 따며 전성기를 열 수 있었던 데는 이 회장님의 관심과 지원 덕분”이라며 “선수들의 훈련 지원이나 복리후생은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고 돌이켜봤다. 김씨는 이어 “레슬링은 국제대회에서 변수가 많은 종목인데, 회장님은 우리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주셨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레슬링을 비롯해 여러 종목의 창단과 운영을 주도했다. 현재 삼성은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레슬링,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 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특히 야구에 관심을 보여 1982년 프로 원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삼성 원년 멤버인 이만수 전 SK 감독은 “삼성 야구단을 명문 팀으로 올려놓은 고마운 분”이라며 “창단 때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아들 이재용 부회장과 야구장도 자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전 감독은 또한 “팀 창단 때 본사로 선수단을 불렀는데, 회장님이 대학교를 갓 졸업한 나를 딱 지목하더니 ‘프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일단 최고가 돼야 한다. 내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이 회장과의 일화를 떠올렸다.
이 회장은 스포츠 외교에서도 한국의 국제 위상을 높였다. 1987년 이전부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을 역임한 이 회장은 1993년부터 3년간 KOC 부위원장을 거쳐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고(故) 김운용 위원, 이 회장에 이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자격으로 2002년 IOC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한국은 2000년대 초반 IOC 위원 3명을 보유해 스포츠 외교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IOC 문화위원회(1997년), 재정위원회(1998∼1999년) 위원으로 활동한 이 회장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 회장으로 동료 IOC 위원들과 쌓은 친분을 활용해 강원 평창이 세 번의 도전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공을 세웠다.
2014년 5월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던 이 회장은 그 해 5월 25일 프로야구 삼성 이승엽이 대구 넥센전에서 홈런을 치는 순간, 떠들썩한 분위기에 잠시 눈을 떴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이 평소 야구를 좋아해 병실에서 가족들은 야구 중계방송을 틀어놨고, 이승엽의 팀 11연승을 확정 짓는 홈런에 한 차례 눈을 크게 떴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의식을 되찾은 건 아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야구단 대표에게 “요즘 열심히 잘해줘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 회장은 2017년 IOC 위원직을 사퇴했지만 삼성과 IOC, 올림픽의 인연은 계속됐다. 삼성전자는 올림픽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IOC와 인연을 맺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두 차례 계약 연장을 거쳐 2028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까지 30년간 IOC 최고 파트너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