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망으로 삼성의 완성차 업체 재진출도 멀어졌단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는 손수 설립한 삼성차를 르노 측에 넘기면서도 지분을 보유하면서 자동차 업계와 연을 끊지 않았다. 특히 일각에선 미래차 관련 주요 기술을 계속 담금질해오면서 완성차 시장 재진출을 꾀한 게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돼왔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2000년 르노에게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를 매각하면서 남긴 지분 19.9%를 현재까지 삼성카드를 통해 보유하고 있다. 삼성이란 상표 사용도 허용, 르노삼성차라는 회사명이 유지되고 있다.
그가 삼성차 설립을 주도하면서 제작한 태풍의 눈 엠블럼도 르노삼성차가 아직도 사용중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올 8월로 기존 계약이 만료됐지만 2년의 유예기간이 있어 삼성 측과 관련 협의를 벌이고 있다”며 “국내에선 그간 르노보다는 삼성차라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 영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삼성과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르노삼성차 경영에 관여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연을 끊지 않는 데에는 고 이 회장의 의중이 담겨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는 경기 용인에 있는 개인 차고에 수십 대의 슈퍼카를 보관하면서 국내 최초의 트랙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레이싱을 즐길 만큼 자동차광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삼성차를 95년 설립한 것도 승용차 사업을 품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90년대 당시 정부는 삼성의 시장 진입에 부정적이었지만, 고 이 회장의 설득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게 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0년 삼성차 매각 이후 그는 자동차 업계와 거리두기를 유지해왔다. 2009년 쌍용차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지역과 업계에선 자동차 산업에 열정이 있는 삼성그룹이 인수해야 한다고 요구를 냈지만 그는 화답하지 않았다.
그랬던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 들어가면서 다시 자동차 업계를 곁눈질하고 있다. 삼성이 기존에 실패한 자동차 산업은 오랜 기술 축적이 있어야 가능한 내연기관차 중심이었지만, 최근 주력하고 있는 산업은 미래차인 전기차, 스마트카 등이라는 차이가 있다. 미래차 핵심 기술은 배터리, 인공지능(AI), 5G, 전장사업 등으로 그간 삼성이 축적해온 사업이다.
실제 삼성SDI가 전기차 배터리를, 삼성전자는 커넥티드카용 정보기술(IT)ㆍ모바일 기술을, 하만은 5G 이동통신 기반 인포테인먼트와 텔레메틱스 등 전장 사업 등을 벌이고 있어 일각에선 그가 복귀할 경우, 전기차 생산업체를 설립하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희망까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에서 결단만 하면 전기차 제작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다수의 완성차 업체에게 기술ㆍ부품을 공급하는 역할에만 주력하고 있다”며 “이건희 회장 사망과 함께 종합 완성차 업체로의 재진출 꿈은 사라졌고, 새 수장 이재용 부회장을 맞는 삼성이 어떤 성장동력을 제시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