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 빠진 밀레니얼… 판은 공정한데 결과는 "글쎄"

입력
2020.10.28 13:00
19면
<14>  밀레니얼에 부는 주식 열풍
'결혼·내 집 마련' 돈 모으기 아득한데…
"누가 돈 벌었다" 소리 들으면 조급해져
문제는 장기분산 투자 아닌 '단타' 위주 
"부작용 막으려면 어릴 적부터 경제교육을"

편집자주

이슈와 화젯거리를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자주 핏대를 세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견 표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의 시각을 담아 한국 사회를 ‘언박싱’ 해보겠습니다. 밀레니얼의 솔직한 체감지수를 느껴 보세요.


2030 세대에게 주식투자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단순히 관심을 갖는 차원을 넘어 몰입하는 밀레니얼이 상당히 많다는 뜻입니다. 올 상반기 KB증권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규 고객 중 56%가 2030 세대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주식 열풍은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교환, 스마트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MTS 거래량이 컴퓨터로 주식을 거래하는 HTS 거래량을 앞지르고 있는데, 이는 2030의 적극적인 투자의 결과로 보입니다.

일부는 아예 학창시절부터 주식투자 하는 게 경제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며 '주식 예찬론'까지 설파합니다. 저금리시대에선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직접 투자를 하는 게 세상 보는 눈도 넓히고 경제적으로도 유익하다는 의견입니다. 게다가 주식투자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성, 부실한 경제교육 등으로 '묻지마 주식투자'와 같은 병폐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밀레니얼에 불어닥친 주식투자 열풍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들은 왜 주식에 빠져든 걸까요. 그리고 주식시장은 기회와 결과가 모두 공정한 시장일까요. 밀레니얼이 생각하는 주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주식을 하는 이유

펭수야 사랑해(펭사): 주변에 공인회계사(CPA) 준비하는 지인들이 있는데 다들 주식 하는 분위기야. 재무제표 분석해서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서 밀레니얼에게 주식은 이제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느꼈어. 그래서 나도 올 초에 삼성증권에 주식계좌 개설하고 투자 해봤어. 수업시간에 경영권 분쟁이 있는 기업에 주식투자 하면 이득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진칼 주식을 구매했어. 생각보다 수익이 나서 소액 투자했던 게 후회돼.

분당동 갈치발(분갈): 나도 최근에 좀 벌었어. 풀무원은 떨어졌는데 삼성전자는 올랐어. 추가로 뭘 살까 고민 중이야.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부문 인수해서 주가가 오를지 떨어질지 지켜보고 있어.

양꼬치엔 닭꼬치(양닭): 요즘 주변에 주식 하는 사람들 널렸어. 내 친구는 유튜브나 방송, 책으로 공부하더니, 이제는 소규모 주식강의까지 열더라고.

분갈: 사모펀드 하는 선배도 있어. 내 동생은 아르바이트해서 삼성전자 주식 조금씩 사고 있는데 계속 오르니까 돈을 꽤 벌었더라고.

귀한곳에 누추한분(귀누): 주변에 서학개미(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도 많아. 애플이나 아마존, 테슬라 같은 IT 주식을 주로 산대. 담뱃값이랑 술값 아껴서 투자하더라고.

티나: 언론에선 기존 투자자와는 다른 2030 주식 열풍의 원인으로 '내 집 마련' 욕구를 꼽기도 하잖아. 2030이 이전 세대보다 내 집 마련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니까.

귀누: 내 생각도 그래. 20대 후반인 내 친구들도 결혼자금이나 내 집 마련 자금을 모으려고 주식투자 한다고 말해. 적은 월급을 투자를 통해 조금이라도 불리면 좋은 거니까.

줌으로 공부함(줌공): 이제 은행에 돈을 넣어 두는 것만으론 많이 벌 수가 없잖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까. 저축해선 돈 벌기 힘드니까 어느 정도 모험이 필요한 거지.

티나: 주변에서 다들 주식하니까 조급한 마음에 뛰어든 친구들도 많아. ‘주식으로 몇천만원 벌었다’는 소리 들으면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지. 물론 장기 투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2030은 아무래도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줌공: 맞아. 지금 2030 투자는 건전하게 자리 잡은 문화라기보다는 한몫 챙기려는 단타성 투자가 많아.

귀누: 비트코인 열풍 때문에 2030이 주식투자에 더 관심을 두게 된 측면도 있어. 학과 선배는 비트코인으로 3,000만원 벌었거든. 그러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비트코인 샀어.

양닭: 코로나19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주식으로 눈을 돌리게 된 원인 같아. 외부활동이 줄어들어 휴대폰이나 노트북 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고.

분갈: 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니까, 주식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 주가변동도 심하고 미래도 안 보이니까 단타로 치고 빠지는 거지. 주식 버블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속출해도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잖아.

양닭: 옛날 어른들은 ‘주식은 도박’ '주식 하면 한강 간다' 이러면서 잔뜩 경계하기도 했었는데, 격세지감이네.

티나: 나는 주식투자 열풍에 대해 무서운 감정이 있어. 다들 주식이라도 해야 집을 산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잖아. 그런데 이제껏 관심이 없던 분야라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다른 분야는 시행착오 거치면 경험이라도 쌓일 텐데 주식은 그것도 안 되니까.

너도나도 하는 주식, 꼭 해야 할까

분갈: 그런데 주식하는 건 좋은데, 너무 큰돈 벌려는 건 위험하지 않나. 교수님도 주식은 사실상 운에 가깝다고 하더라고. 지인이 투자한 주식이 상장폐지 된 것도 봤거든.

펭사: 주식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인데, 밀레니얼 중에선 대규모 손실을 각오하면서까지 통큰 투자를 할 사람은 많지 않아. 열풍이라고 하지만, 주식투자는 선택이라고 생각해.

줌공: 그래도 이제는 필수가 된 것 같아. 저성장과 저금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잖아. 은행 예금으로는 돈이 안 모이고. 꼭 주식이 아니더라도 금융상품 통해서 적당히 내 돈 불리고, 경제개념 갖추는 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분갈: 현재 수입으로 만족하면 필수는 아니지. 그런데 결혼하고 집사고 자녀들 키우려면, 늘 돈이 부족하잖아. 그래서 주식투자가 필요한 거 아닐까.

티나: 나는 생각이 달라. 테마주 같은 걸 보면 백신, 낙태, 파업 등 사회적 이슈에 영향을 많이 받잖아. 주식이 필수가 되면 도덕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들마저 경제원리에 휩쓸릴 수 있어. 모든 사람들이 특정기업의 이해관계자가 되는 거니까. 경제적 이득이 우선되고 윤리는 뒷전이 돼 버리면 안되잖아.

귀누: 주식투자는 몰라도 주식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해. 학교에서 경제교육이 너무 안돼 있어. 경제도 모르는데 주식을 어떻게 알겠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너무 터부시하는 것도 문제 같고.

줌공: 핵심은 제대로 배우고 건전하게 투자하자는 거지. 최근 빅히트 상장하면서 BTS가 이슈화되니까 무작정 넣었다가 피해 본 사람들 많잖아. 그걸 보고 너무 짧은 생각으로 주식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어.

줌공: 투자가 너무 단타 위주로 이뤄지니까, 주식은 여전히 도박에 비유되는 것 같아. 장기투자로 임한다면 훨씬 건전한 투자문화를 만들 수 있잖아. 기왕 하게 될 거면 어릴 때부터 금융투자에 대해 제대로 교육했으면 좋겠어.

주식투자의 성패는 어디에

펭사: 주식투자 잘 하려면 새벽같이 시장동향 파악하고 매일 어떤 뉴스가 나올지 예측해야 하지 않나.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에 투자를 많이 하는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은 시장동향을 예측하는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잖아. 운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해.

양닭: 장기적으로 분산투자 해서 수익을 얻었다면 노력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단타로 대박 나는 건 노력보다는 운이 아닐까.

귀누: 단타는 운이고 장타는 노력이다? 이건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거 같아. 단타든 장타든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얕은 지식과 정보만 가지고 덤벼드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펭사: 케인스가 말한 ‘야성적 충동(인간의 비경제적인 본성도 경제를 움직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개념)’도 주식 등락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 동물적 감각을 베이스로 두고 재무제표, 시장동향, 뉴스 등을 통해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해야 성공할 수 있잖아.

티나: 맞아. 주식이 노력으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 특히 단타와 주식카톡방이 주류가 된 요즘에는 언제 들어가고 언제 나갔는지에 따라, 개미들이 서로 돈을 따고 잃는 제로섬 게임이 된 것 같아. 주식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든지 ’열풍’이 무서운 이유는 초보자들이 쉽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거잖아.

귀누: 그러게. 나도 주식시스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봐. 누구에게나 똑같은 룰이 적용되니까.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다를 뿐이지.

티나: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 아무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 앞에서 리스크를 심도 있게 따져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주식시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안전망은 필요하다고 봐. 주식은 운이 작용하는 투자잖아. 노력만으로 안 되는 거라면 안전망은 있어야지.

양닭: 예를 들어 설정한 금액보다 큰 금액으로 반복적으로 거래하면, 정말 하겠냐고 물어볼 수도 있잖아. 물론 개인이 계속 그렇게 선택하면 책임을 져야겠지만.

분갈: 부동산은 투자에 실패해도 실물은 남지만, 주식은 안 남잖아. 상장폐지되면 아예 다 잃을 수도 있고. 최소한의 안전망이나 제어가 필요해 보여.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주식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인가

귀누: 최근엔 주식투자를 두고 공정성 논란도 생겼어. 주식으로 얻은 소득이 불로소득이냐 아니냐는 문제인 것 같아. 주식은 별다른 노력 없이 타이밍과 운으로 돈 버는 것으로 생각하는 통념이 있잖아.

양닭: 주식으로 벌어들인 돈과 일반적인 근로소득을 같은 범주로 묶을 수는 없지. 공정의 개념을 주식투자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거야.

줌공: 그래도 주식시장 자체는 누구한테나 공정하잖아. 누구든지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개미들은 그들만의 투자철학을 갖고 그 철학에 맞춰 투자하는 거고.

티나: 하지만 주식 열풍이 불면서 시장 자체가 단타성 도박장으로 변질됐어. 누가 정보를 더 많이 얻느냐의 싸움이고, 누가 더 일찍 투자하면 수익이 나느냐의 문제가 돼 버렸어. 완전히 공정한 시장은 아니라는 거지.

펭사: 맞아. 판 자체는 공정하지만, 결과적으론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 주식을 더 밀접하게 접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유리하잖아. 경영ㆍ경제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사업가나 금융인들만큼 시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버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 주식이 아닌가 싶어. 주식을 통한 부의 대물림도 만연해 있으니까.

양닭: 주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 주식을 통해 계층 이동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라고 생각해. 투자 초기부터 자본의 규모가 너무 차이가 나니까.

귀누: 나도 주식을 통한 계층이동은 어렵다고 봐. 주식으로 큰 수익을 낼 정도면 초기 투자금이 최소 5억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은 돈으로 연이어 큰 이득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일 테니까.

줌공: 그래서 포트폴리오 투자를 하고, 꾸준히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 포트폴리오를 꼼꼼하게 짜는 사람에게 주식은 불로소득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어.

귀누: 그런데 주식투자가 공정하다면, 왜 부동산 투자는 투기로 몰리고, 주식투자는 정당한 투자로 비치는 걸까.

분갈: 주식에선 개미 투자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소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니까 상대적으로 공정해 보이잖아. 직접 종목도 분석해서 고르는 거고. 반면 부동산 투자는 보통 억대부터 시작하잖아. 주식은 적은 시드머니로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진입장벽이 좀 낮은 느낌이지.

줌공: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는 거네.

정리=왕나경 인턴기자

참여=김단비, 노지운, 이인서, 장수현,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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