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56ㆍ사법연수원 24기) 서울남부지검장이 22일 사의를 표명하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조목조목 비판하자 “검찰을 흔드는 정계를 상대로 검사의 결기를 보여줬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수사팀이 더욱 흔들리게 됐다”는 안타까움도 표시했다.
박 지검장은 이날 검찰 내부 전산망 이프로스에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는 제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글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라임자산운용 사건과 관련, 김봉현(46ㆍ구속기소)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제기한 의혹 수사 등에 대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권한을 박탈한 지 사흘 만이다.
박 지검장은 올 1월 의정부지검장을 거쳐 8월 인사에서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이동한 뒤 라임 수사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 김 전 회장의 폭로로 ‘검사 향응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상당한 부담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지인에게 “내가 출세하려고 한 적도 없는데, (서울남부지검장 자리에 있는 것이) 힘들다”면서 고충을 털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지검장은 의정부지검장 재직 당시, 윤 총장 장모 사건을 담당하면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올해 3월 윤 총장의 장모 최모씨를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을 두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인사를 받은 건) 의정부에서 윤 총장 장모를 수사해 기소했다는 공을 인정받은 것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를 받기도 했다. 이날 입장문에서 그는 “의정부지검 수사팀은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했는데, 이후 언론 등에서 제가 누구 편이라고 보도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하는 법조계의 시선에 불만을 내비친 것이다.
박 지검장의 글에는 공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표하는 동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후배 검사들은 “‘비록 곧아 부러지는 칼이 될지언정 굽어 온전한 갈고리는 되지 말라’는 초임 때 부장님 말씀이 생각난다”거나 “정치적 중립이 최고로 보장돼야 할 검찰과 법무부가 정쟁의 수단이 돼 버린 것 같다”면서 그의 사직을 말렸다. 한 일선 검사장은 “정치권과 추 장관에게 검찰의 중립성을 강조한, 근래 들어 오랜 만에 검사의 결기를 보여준 것”이라며 “누가 박 지검장을 사직하게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압박을 이겨내고 검찰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든 사건을 책임감 있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한 수도권 검찰청 간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라 수사팀이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걸 지검장이 막아줬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 사건일수록 수사팀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수 있도록 우산이 되어 줄 사람이 절실하다”며 “옷을 벗더라도 수사를 마무리한 뒤 그래야 했다”고 했다. 법무부는 이날 박 지검장의 공백을 메울 후속 인사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