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들은 어디에 있으며 무슨 색일까

입력
2020.10.22 17:30
25면

편집자주

그 어느 때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힐링이 중요해진 지금,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넓은 의미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과 과학, 기술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어디에 있을까.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감정들의 위치가 심장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가 놀라거나 두려울 때, 기쁘거나 화가 날 때 감정의 동요로 인해 심장 박동수가 변하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심장은 영혼의 집이기에 모든 감정의 원천은 심장이라고 이야기했다. 동양에서는 좀 더 나아가 감정들의 위치를 각각의 내장기관들과 연관 지었다. '황제내경'이나 '동의보감' 등 여러 동양의학 경전들을 보면 기쁨은 심장, 슬픔은 폐, 분노는 간, 두려움은 신장에 있다고 이야기하며, 이런 감정들은 내장기관들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조절된다고 믿었다.

현대에 와서 감정들의 위치는 자연스레 뇌가 되었다. 뇌 안에서의 여러 화학물질들의 변화와 작용들이 감정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뇌 안의 변연계(Limbic System)는 감정과 관련된 많은 작용들을 관장하고 조절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 뇌과학을 소환해도 어떠한 감정이 특정 뇌 부위의 활성화만으로, 또는 특정 화학물질의 작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최신 이론들에 따르면 오히려 뇌는 우리 몸에서 전달되는 여러 신체 감각들을 기반으로 뇌와 몸의 신호들을 종합하여 우리가 어떠한 감정을 느낄지 결정한다. 감정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뇌와 몸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핀란드 알토 대학교에서 2014년에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700여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각각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낄 때 자기 몸의 어떠한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느끼는지 신체 영역들을 색칠해 보도록 한 것이다. 일관되게 기쁨은 온몸에 따뜻하게 퍼지는 느낌으로 색칠되고, 우울감은 사지가 차갑게 식어가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화는 머리 끝까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느낌으로, 슬픔은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하게 꽉 막히는 느낌으로 표현되었다.

요즘 느끼는 우리의 감정들을 색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무슨 색일까.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유행이다. 영어로 'feeling blue'라고 함은 우울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겨난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지칭한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색이 하나 더해졌다. ‘코로나 레드’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우울감이 분노로 변해 참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블루나 레드는 우리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거나 표현하는 것이 능숙치 않다. 그래서인지 미국 정신의학회에도 등재된 우리만의 특유한 질병이 있다. 이름하여 H.W.A.B.Y.E.O.N.G. – 바로 글자 그대로 ‘화병’이다. '한국에서 특히 자주 발견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지칭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될까. 결코 웃을 수 없는 슬픈 일이다.

감정들은 손으로 잡히지 않기에 실체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감정들을 온전히 꺼내어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꾹꾹 눌러 두고 어딘가 치워 두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병이 된다.

삶의 순간들이 마치 무성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소리 없이 힘겹게 이어지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감정들을 조심조심 하나씩 꺼내어 보자. 우리의 감정들은 어떤 색일까? 온전히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나의 감정들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치유의 시작이다. 빛 바랜 우리 삶 속에 어떤 색이든 색깔을 칠해 보자. 나중에 보면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해 있길 바라며.

장동선 뇌과학 박사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