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낙태'도 가능하다, 아니 가능해야 한다

입력
2020.10.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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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에리카 밀러 '임신중지'

편집자주

이제 페미니즘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이론과 실천 모두 여전히 어렵습니다. ‘바로 본다, 젠더’는 페미니즘 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가 돼줄 책들을 소개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낙태한 여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중년 여성들이 떠오른다. 당신들 시대의 낙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호호 웃던 모습. 70년대생인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유쾌함이었다. 같은 경험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감정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그것이 임신중지가 ‘애국’이던 시절에 가임기를 보낸 여성과 ‘이기적 선택’이란 비난을 들으며 자란 여성 사이의 차이임을 알고서 깨달았다. 한국사회에는 ‘낙태죄’라는 법에 앞서 감정의 굴레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임신중지'의 저자 에리카 밀러에 따르면 임신중지에 반대하는 사회에는 임신중지를 둘러싼 감정의 목록이 존재한다. 이 목록에서 태동과 출산은 행복의 항목에, 임신중지의 과정은 괴로움과 애통함의 항목에 포함된다. 그리고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에게는 “당연히 수치스러울 것”이라는 낙인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런 감정의 구획 속에서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끔찍한 일로 내면화하게 된다.

밀러는 임신중지가 이미 비범죄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임신중지가 피해야만 하는 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임신중지에 계속해서 후회, 고통, 슬픔, 비통 등의 감정을 갖다 붙이는 각본을 반복함으로써, 임신중지는 “본래 애통함과 수치를 야기하는 절차”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임신중지가 여성들에게 필연적이고 천성적으로 야기하는 공통된 감정 따위는 없다고 설명한다.



'임신중지'의 원제는 '행복한 낙태(happy abortion)'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이들도 낙태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 앞에서는 흠칫 멈춰 설 것이다. “신나서 낙태하는 여자는 없다”고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현실에서, “행복한 낙태”는 전략적으로도 피해야 하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밀러는 질문한다. 어떤 사람은 임신중지를 하면서 죄책감이 아닌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없는가.

이렇게 법이 아닌 감정의 각본이 만들어내는 규범이 낙태죄 폐지 이후 우리가 만나게 될 반(反) 임심중지 사회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여성들은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고통도, 안도도, 죄책감도, 시원함도 있다. 각각의 감정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며, 한 사람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재단해선 안 된다. 그래서 다양한 임신중지 경험과 다양한 감정이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한다. 이것이 #ShoutYourAbortion, #나는낙태했다 등의 의미 중 하나일 터다. 감정의 공유를 통해서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중지”가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미안해하지 않는 임신 중지”는 한 개인의 선언만으로 가능해지진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비범죄화가 아니라 완전한 합법화가 필요하다. 임신중지 합법화란 ‘낙태죄’를 그저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포괄적인 성교육을 활성화하며,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임신중지를, 해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낙태죄’를 형법에 남기려는 정부 개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낙태죄’가 형법에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강고한 반 임신중지 정서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하고 섹슈얼리티를 단속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비범죄화 이후 만들어질 다양한 제도의 성격 역시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오직 출산만을 궁극의 기쁨이자 목표로 설정한 채로 ‘선택의 여지’만 남겨놓는 제도 안에서는 임신중지가 온전한 권리가 될 수 없다.

“규범은 법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에리카 밀러의 말은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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