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ㆍ13층 엘베 버튼이 없는 '융합 용광로' 같은 인니 문화

입력
2020.10.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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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1조 달러 16위 경제대국... 한국과도 교역 활발
수도 이전 프로젝트 추진... '세종' 모델 수출 기대감
다양한 문화ㆍ종교 융합 강점... '느긋함' 숙지해야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11>중요한 전략적 경제 파트너, 인도네시아

한국 경제가 1998년 외환위기를 빠르게 회복한 배경에는 당시 급격히 성장한 중국시장이 있었다. 거대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국내 기업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새로운 소비시장은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도네시아’를 꼽고 싶다.

세계 4위 인구대국... GDP도 1조 달러 넘어

인도네시아는 가장 잠재력 높은 미래지향적인 소비시장으로 거론된다. 2억7,000만명의 세계 4위규모 인구대국이기 때문이다. 단일 국가로는 이슬람교 인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높다. 작년엔 유엔안보리의 비상임 회원국으로 선출되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엔 어떤 해외 열강과도 연대하지 않는 비동맹운동의 창립 회원으로, 신흥국들의 리딩 국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경제규모도 상당하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조 달러가 넘는다. 아세안 10개국의 모든 GDP를 합한 금액의 40%에 달하는 세계 16위 경제대국이다. 세계적인 자원강국이자 농산물 수출 국가이기도 하다. 주요 채굴 자원은 석탄과 동, 금, 주석, 니켈 등이며 원유는 세계 28위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농산물 중에는 팜오일이 세계 1위, 고무는 세계 2위, 카카오는 세계 3위, 커피는 세계 4위 생산국이다.

자원이나 농산물이 부족한 한국의 처지를 고려하면 인도네시아와 상호 보완적인 교류가 가능하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교역이 진행돼 왔다. 1970년대 인도네시아 원목을 재료로 가구를 생산한 ‘보르네오’사가 대표적이다. 식품회사 역시 인도네시아 원료를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일찍부터 현지에 진출했다. 값싼 노동력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인데, 일례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표적인 업종은 노동집약산업인 섬유 분야다.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은 경제 대부분을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화교 인구는 280만명 수준으로 전체 인구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화교들이 인도네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재계 서열 30위 중 20여개가 화교 기업으로 분류된다.

인도네시아로의 진출은 이슬람 국가로 뻗어나가는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은 종교적 율법을 엄수해 만든 물건인 할랄 표시가 획득된 제품들을 소비한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할랄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신(新)할랄 인증법(할랄제품보장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출을 시도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할랄 인증을 받으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슬람 국가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섬마다 정주여건 크게 달라... 수도 집중화 현상도 심각

이처럼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1만7,500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로, 이 중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섬은 6,000개 정도이다. 가장 큰 섬으로는 자바와 칼리만탄, 수마트라, 파푸아, 술라웨시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국민 절반 가까이는 자바섬에 거주한다.

섬이 많아 국토의 효과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쉽지 않다 보니, 섬마다 정주여건뿐 아니라 경제활동 기회도 큰 편차를 보인다.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수도 자카르타는 전 세계에서 노숙자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 군소 섬에 거주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 등 기회를 찾아 수도 자카르타로 무작정 이주한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날씨가 연중 열대기후이기 때문에 노숙이 용이하다는 점도 노숙자가 많아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시라는 오명 또한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것 중 하나가 웬만한 거리는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점이다. 걸어서 이동하면 10여분이면 도착할 곳이 자동차를 타면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할 때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지 마음을 졸였다는 경험담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수도 이전 프로젝트를 내놓을 만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작년 8월 동부 깔리만딴 지방에 위치한 쁘나잠 빠사르 우따라(Penajam Paser Utara)군과 꾸따이 까르따느가라(Kutai Kartanegara)군으로 수도를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계획이 연기되는 분위기이지만, 자카르타의 지반이 점점 가라앉고 있는 데다 수질오염 등 환경오염도 심각해 시기의 문제일 뿐 수도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한 우리 정부가 공공 거버넌스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와 다양한 협업 기회를 만들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문화 뒤엉킨 용광로 같은 나라

인도네시아만의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를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인도네시아는 별도의 국교를 두고 있지 않다.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소수민족들과의 융합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다. 이를 위해 각 소수민족이 신봉하는 종교들을 모두 존중한다. 이 때문에 자카르타 시내에서는 이색적인 장면들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는데, 이슬람 사원 바로 옆에 가톨릭 성당이 나란히 위치해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두 사원이 주차장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에 차별을 두지 않는 모습은 현지 호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호텔 엘리베이터엔 4층과 13층 표기되어 있지 않다. 동양 문화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숫자 4와 서양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숫자 13이 모두 삭제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도네시아는 특정 문화권에 국한해 해석할 수 없고, 다양한 문화가 뒤엉켜 있는 용광로 같은 나라라 할 수 있다.

산따이(Santai)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일처리 문화도 반드시 숙지해야 할 요소다. 아세안 대부분 국가들이 행정처리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느긋한’ 나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라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에 갖고 있는 편견 또한 주의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최대 시장규모와 소비인구를 갖고 있는 국가로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개별 구매력에 비해 제품 품질에 대한 ‘눈높이’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인도네시아 시장을 가볍게 보고 진출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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