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들이 잇따라 스러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11명이다. 대부분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살기 위해 일하는데 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아이러니다.
이 ‘죽음의 행렬’은 강제적이다. 새벽 2시 퇴근해 다시 세시간 뒤 작업을 위해 출근해야 하는 게 일부 택배노동자들의 삶이다. 맡은 물량을 제때 배송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압박감도 크다. 그래서 사인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배송물량 증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단편적이다. 28년 전 택배산업이 시작된 후부터 굳어진 노동 환경으로 보는 게 옳다. 올해 정부가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한 것도 노동자들의 고충을 이번에야 알게 돼서는 아닐 것이다. 12일 사망한 한진택배 노동자 김모씨의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문자에 드러난 그들의 고됨을 그 동안 정부와 기업, 우리 사회는 외면해왔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자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택배노동자의 과로 여부와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택배노동자 산재보험 제외신청서 대필 등을 들여다보겠다며 칼을 빼 들었다. 여당은 질병이나 육아, 사업주 귀책으로 인한 휴ㆍ폐업에만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허용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추진할 참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만시지탄이다.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진 뒤에야 대책을 마련하는 행태는 여전하다. 정부와 국회는 숱한 죽음이 이어진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게 없는 듯하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혼자 작업하다 숨진 김모(당시 19세)군의 사고사에 대한 대책은 2년이 훨씬 흘러 한국서부발전 계약직 김용균(당시 24세)씨가 숨져서야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으로 마련됐다. 그럼에도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자 이번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가 나온다. 앞서 2월 한국일보의 ‘죽음과 바꾼 법들’ 연속 기사는 “누군가 숨져야 법이 만들어지고, 그래야만 바뀌는 사회라면 정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법이 만들어져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비극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못하게 한다.
잇단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은 기시감을 던진다. 2016년부터 올해 초까지 잇따른 사망자가 발생했던 우체국 집배원들의 사례와 다르지 않아서다. 이 기간 돌연사와 업무 부담에 따른 극단적 선택이 30명에 달했다. 기업과 정부가 관심만 가졌다면 업무가 비슷한 택배노동자들의 연속적인 비극을 예견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경고등이었다.
앞서 17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고 김원종씨의 추모 집회에서 그의 부친 김모(80)씨는 “아들이 식사도 하지 못하고 하루 14시간씩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균씨의 부모도, 구의역 김군의 유족도 앞서 같은 바람을 내비쳤다. “내 자식으로 이 비극이 끝나야 한다”고 말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들의 호소에 답해야 할 책무가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해법도 알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인력 750명을 늘려 집배원들의 주 5일 근무를 가능케 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71시간도 넘는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줄여야 죽음의 행렬을 끊을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호소가 정말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