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에 시동을 걸자 노동계가 “개악안”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해당 법안이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등 경영계 편을 든다며 줄곧 반대해왔지만, 최근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노동법 개정을 제안하며 ‘고용 유연화’ 등 노동자에 불리한 화두가 떠오르자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2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한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법안은 늦어도 다음달 중순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이에 고용노동부가 이날 오후 토론회를 열어 노ㆍ사의 의견을 수렴하려 하자 노동계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비판에 나선 것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ILO의 기준은 물론 현행 노동법보다도 미흡하다”며 “당장 문제의 정부 개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연말까지 모든 조직역량을 동원한 총력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법안 상정 시 총파업 등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정부는 지난 7월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조합법 등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공무원과 교원의 노조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정부안은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마련한 공익위원안에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절충했다. 이에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사업장 핵심시설 내 쟁의행위 금지 등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의 요구가 담겼다. 노동계가 가장 반발하는 지점이다.
경영계는 반면 정부안이 오히려 노동계에 치우쳤다는 입장이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활동을 허용할 경우 노사간 갈등이 더 커지고 기밀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 노조의 비용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총은 특히 우리나라의 노사협력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가장 낮다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를 들어 노사간 전반적인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의 입장은 최근 김종인 위원장의 노동법 개정 제안과도 이어진다. 노동계가 더욱 경계하는 이유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은 “김종인 위원장이 노동 유연화를 언급하면서 쉬운 해고와 임금ㆍ노동시간 악화를 요구한 데 대해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해 이미 정부발 노동개악이 시작됐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어려운데 얼마나 더 많이 해고돼야 만족하겠나”라고 말했다.
노사 입장차가 첨예한 가운데 정부안은 다수 여당의 힘을 입어 올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안이 최근 문제로 떠오른 택배기사 등의 노동권 보장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고용부의 ‘노조법 개정 관련 노사정 토론회’에서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ILO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노조권을 보장하도록 한국 정부에 오랫동안 권고했지만, 정부안에는 반영되지 않고 장기 과제로만 미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