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번에 우버가 사업을 중단하게 되면 저도 우버를 하면서 벌었던 엑스트라 수입이 끊기긴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버를 하며 버는 수입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복잡하네요.”
우버 운전을 하는 하네디(56ㆍ산호세 거주)는 11월 3일 미 대통령 선거 못잖게 ‘주민투표(Prop22)’ 결과가 큰 관심거리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주민투표에서 우버, 리프트, 포스트메이츠 등 소위 공유경제 또는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 사업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란계 이민자인 하네디는 이번 대선에 누굴 찍어야 할지는 일찍부터 정했다. 그러나 주민투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그에 따라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네디는 “본업(가드닝)이 있지만 남는 시간에 우버 운전을 하면서 부수입을 올리곤 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가 어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3일은 미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미국 선거의 특징은 이처럼 전국적 투표일에 다양한 투표를 동시에 한다는 점이다. 각 주 사정에 따라 상하원 의원, 주지사, 시장 등 다양한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진다. 한국처럼 ‘대통령’만 투표하는 것은 아니다.
11월 3일엔 대통령 선거 외에 주 상하원 의원이 교체된다. 상원의원(임기 6년)은 35명이 바뀌고 하원(임기 2년)은 전원(435명)이 바뀐다. 이뿐 아니라 뉴햄프셔,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주지사 선거도 치러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민발의안’ 투표도 치러진다. 주민발의안(initiative), 일명 주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 혹은 간접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도입, 시행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 때는 동시에 시행된 주민발의안 투표에서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안이 통과돼 캘리포니아주에서 마리화나를 판매, 유통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주민투표의 파괴력은 크다.
올해 캘리포니아주에 상정된 주민발의안은 12개다. 이 중에서도 우버, 리프트 등 한때 공유기업으로 유명했던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주민발의안22(Prop22)’ 통과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다.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우버, 리프트는 캘리포니아에서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며 사업을 계속할 수 있고 부결되면 사업을 바꾸거나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공유경제 또는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 사업의 운명이 결정된다.
주민발의안22는 캘리포니아에서 시행하고 있는 AB5법에서 우버, 리프트 등을 제외하자는 안이다. 이 발의안의 정식 명칭은 ‘앱 기반 운전자 및 서비스 보호법’으로 요약하면 ‘우버와 리프트 운전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를 묻는 투표다.
이 투표의 원인이 된 AB5법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우버, 리프트 등 차량공유서비스 운전자를 독립계약자가 아닌 직원(employee)으로 분류하는 법으로 올 1월부터 시행됐다. AB5법에 따르면 우버, 리프트는 운전자를 계약직(독립계약자)이 아닌 종업원(정직원)으로 대우하고, 운전자(정직원)가 소속된 기업(우버, 리프트)은 이에 상응하는 세금을 납부하며 운전자에게 보험 및 휴가 등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버, 리프트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이 ‘플랫폼 회사’가 아닌 기존 택시회사처럼 운영되는 것이다.
우버와 리프트는 AB5법 통과 이후에도 “운전자가 적절하게 분류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캘리포니아 법원은 “AB5를 위반했다”고 판결, AB5 강제 시행 명령을 내렸다. 이후 우버와 리프트는 이 법을 유예하거나 무력화하는 시도를 했으며 그 종착역이 11월 3일 주민발의안 투표(Prop22)인 것이다.
주민발의안22가 통과(Yes on Prop22)되면 우버, 리프트 등 긱 이코노미 기업들은 운전자를 기존처럼 독립계약자로 고용할 수 있게 되며 부결(No on Prop22)되면 우버, 리프트는 운전자를 정직원으로 채용해서 사업을 해야 한다. 이 결과를 뒤집을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그동안 논란이 된 우버, 리프트 운전자의 지위와 대우를 결정하는 ‘끝장 투표’가 됐다.
우버, 리프트는 자신들은 택시회사가 아닌 기술기업이며 운전자들은 회사의 핵심 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를 직원으로 분류해 최저임금, 건강보험과 각종 비용 등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한다. 주민발의안22가 통과되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에서 철수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우버 서비스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으며 존 짐머 리프트 CEO도 “캘리포니아에서 차량 호출 사업을 중단하거나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우버와 리프트는 캘리포니아 주민발안 투표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의 홍보 및 로비 자금을 집행했다. 배달 업체인 도어대시, 포스트메이츠, 인스타카트 등도 합세, 선거 전까지 약 3억달러(3,418억원) 상당의 자금을 쏟아 붇는 등 투표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캘리포니아,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우버, 리프트뿐 아니라 기그 이코노미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공유경제가 전 세계에 확산됐는데 정작 홈그라운드에서 사업을 중단해야 하며 이는 전 세계에 퍼진 공유경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버는 AB5를 준수하고 주민투표가 부결된 채 캘리포니아에서 계속 사업을 하면 우버 요금이 25~111%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CNBC는 우버, 리프트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데 이어 이번 투표가 부결되면 향후 사업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기그워커라이징(Gig Worker Rising), 위드라이브프로그레스(We Drive Progress) 등 운전자 노조는 이 투표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노조에 소속된 드라이버 노동자는 약 5만5,000명도로 파악되고 있다. 뉴욕타임즈, LA타임스, 새크라멘토비 등 유력지도 사설을 통해 “부결(No on Prop22)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UC버클리대에서 지난 9월 2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39%, ‘반대’가 36%로 겨우 3% 차가 났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25%에 달한 데다 투표 한 달을 앞두고 진행한 여론조사여서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 분위기도 찬반이 팽팽하게 갈린 상태다.
대규모 홍보, 로비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전자담배 회사 줄(Juul)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자담배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법을 통과시키자 이를 무력화하는 로비를 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찬성 캠페인(Yes on Prop22) 측에서는 ‘운전자가 원한다’는 방향을 설정했다. 대다수 운전사가 독립적으로 일하기 원한다는 것이다. 찬성 측 설문조사에 따르면 앱 기반 드라이버 60% 이상이 이번 발의안 통과를 지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캠페인 측은 "우버, 리프트 등이 수년간 운전자를 이용,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나 성장의 기반이 된 운전자에게는 수익을 나누지 않았으며 이번 투표를 통해 공정한 임금과 혜택을 나누는 법안을 영구적으로 무력화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11월 3일은 우버, 리프트 등 회사 차원이 아니라 미래 ‘공유경제’ 산업의 운명이 걸린 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