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제돌이, 수족관에서 죽은 안덕이

입력
2020.10.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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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돌고래인데 이렇게 운명이 다를까.

2009년 5월 제주 서귀포 성산읍 앞바다에서 붙잡혀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에 동원됐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2년 후인 2011년 서울대공원을 운영하는 서울시는 경찰의 수사로 불법 포획된 사실이 확인된 제돌이의 방류를 결정했다. 2013년 제돌이는 불법포획된 또 다른 돌고래 공연업체 퍼시픽랜드의 춘삼이∙삼팔이와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 2015년 태산이와 복순이, 2017년 금등이와 대포까지 모두 일곱 마리가 바다에 방류되면서 서울대공원 돌고래 공연장은 텅 비었다.


이달 초 공연을 하던 돌고래와 바다사자들이 머물던 자리는 돌고래의 역사를 담은 '돌고래 이야기관'으로 거듭났다. 우리나라에서 돌고래 쇼를 처음 시작한 지 36년 만이다. 돌고래 없는 돌고래 이야기관의 주인공은 바로 제돌이다. 영상과 전시를 통해 제돌이가 어떻게 붙잡혔다 바다로 돌아가게 됐는지, 바다에서의 삶은 어떤지에 대해 소개한다. 동물의 상태를 기록했던 사육사의 손글씨 노트, 공연에 쓰였던 물품 등도 전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제돌이 천국이다.

예전에 영국 주요 동물원에서는 코끼리가 죽으면 새로운 코끼리를 들여오는 대신 석상을 세우고 왜 코끼리가 동물원에서 살 수 없는 동물인지, 사람들이 코끼리 서식지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고 들었는데, 이런 선진국형 동물원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설명에서 제돌이가 쇼를 하면서 행복하게 지낸 것처럼 묘사되는 등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동물 없는 동물원'에 한 걸음 다가선 점은 반갑고,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같은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 다른 한편에서 벌어지고 있다. 돌고래 체험관광시설인 제주 마린파크에서 큰돌고래 안덕이가 8월에 폐사한 사실이 얼마 전에서야 밝혀진 것이다. 2011년 일본 다이지에서 잡혀온 안덕이는 만지기, 사람과 함께 수영하기 등 온갖 체험에 동원되어 왔다. 동물단체들은 안덕이가 올봄에도 좁은 사육 공간에 갇혀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정형행동을 보여왔다며 폐사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실제 국내 수족관 고래류는 지난 10년간 61마리 중 32마리가 폐사했다. 이들은 체험과 관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 접촉, 소음 공해, 조명으로 고통 받는 수족관 고래들의 폐사는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돌고래 폐사나 체험 관련 비판 기사를 쓰면 관련 업체로부터 종종 메일을 받는다. 본인들이 누구보다 돌고래를 사랑하며 세심하게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관련업체들이 간과한,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아무리 잘해줘도 돌고래에게 수족관은 그저 좁은 감옥일 뿐이라는 것. 하루에 보통 160㎞를 움직이는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둬놓는 것은 사람이 평생 침대 위에서 사는 걸로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인공지능(AI)기술이 적용된 로봇 돌고래가 개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의료 등급 실리콘으로 피부를 만들고 AI로 행동 양식을 학습하는 진짜 같은 돌고래라고 한다. 국내 수족관에 남은 돌고래는 29마리.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돌고래를 볼 수 없는 날이 더 빨리 오길 바란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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