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협소주택은 아파트를 탈피하려는 젊은 세대들의 주거적 대안에 가까웠다. 노후를 앞둔 중ㆍ장년층은 좁은 공간과 가파른 계단을 이유로 기피해 왔다. 올해 2월 서울 당산동 오래된 공업지역 내 단층집들을 비집고 올라온 하얀 협소주택은 대학생인 두 딸을 모두 독립시킨 50대 부부, 둘만의 보금자리다. 44.28㎡(13.4평)의 땅에 지어진 4층집의 총 면적은 95.25㎡(28.8평)다. 층당 면적이 26.56㎡(8평)에 불과한 집의 1, 2층은 임대 공간이다. 부부는 3, 4층에 산다. 부부는 “아이들이 자랄 때는 공간도 넓어야 하고, 학군도 고려해 답답해도 아파트에 살았지만,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니 일터와 가까우면서도 둘만 간소하게 살 수 있는 협소주택에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협소주택은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집의 설계를 맡은 이동진ㆍ차석헌ㆍ강성진 건축가(틔움건축 공동소장)는 “작은 집이니까 무턱대고 각 공간의 크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용자에 맞게 최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최적의 공간은 계단 폭을 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집의 모든 계단 폭은 80㎝다. 성인이 오르내리기에 넉넉하진 않지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각 층을 돌아 연결하는 코너 공간 계단도 최적의 각도를 찾아냈다. 30도 기울기로 세 개의 계단을 차곡차곡 쌓아 90도의 직각에 맞춰 넣었다. 각도를 더 키우면 계단참이 넓어져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건축가는 “계단이 있는 동선 공간을 줄여야 사용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정주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계단의 높이, 크기, 각도를 집에 맞춰 미세하게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작은 집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3층 현관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동선 공간에 화장대를 설치하고, 수납공간을 넣어 정주 공간처럼 활용했다. 현관에서 3층 부부의 침실로 가는 짧은 동선에 세탁실과 화장실을 압축적으로 배치했다. 옷방이나 욕조 등 특정 기능에 맞춰진 공간들은 모두 제외됐다.
건축가는 “아파트에서 침실 옆에 딸린 옷방, 화장실 등 풀어져 있던 공간을 사용자의 생활패턴에 맞춰 압축적으로 정렬했다”며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씻는 최소한의 공간만 남겨 뒀다”고 말했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4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동선 공간인 계단 옆에 정주 공간인 주방을 배치한 것도 같은 이치다. 주방은 작지만 수납을 늘려 2인 가구가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창과 문은 작은 집을 커 보이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아파트와 마주한 도심의 협소주택이지만 크고 작은 창을 곳곳에 낸 이유다. 3층 현관에 들어서면 창과 문이 집의 남북을 관통하는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벽이 아니라 창 너머 외부로 시선을 끌어내어 공간이 양옆으로 확장된다. 3층에서 계단을 올라 4층으로 가면 천장까지 이어지는 높이 4m의 전면 창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맞은편에도 창을 내 빛을 들이고 시선을 끌어낸다.
남북으로 큰 창을 낸 거실의 서쪽에도 창을 내어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를 통해 집 안에서도 계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건축가는 “빽빽하게 주택이 밀집한 도심에서는 주로 외부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창을 크게 내지 않지만 협소주택에서는 창을 크게 내야 답답하지 않다”며 “대신 블라인드나 필름시공 등을 통해 사용자가 외부시선이나 햇빛 등을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고 말했다.
집은 널찍한 앞마당 대신 쓸모 있는 옥상을 갖췄다. 부부가 가장 애용하는 공간이다. 주방 옆 계단을 오르면 6.6㎡(2평) 남짓한 옥상이 나온다. 옥상은 집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작아도 답답하지 않게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을 꼭 만들어 달라”는 부부의 요청에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 화답한 공간이다.
건축가들은 일반적으로 한 층을 쌓아 올릴 때처럼 보(梁ㆍ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지지대)를 쌓고 지붕을 얹고 그 위에 옥상을 만드는 대신, 위에서 옥상 공간만큼만 보를 만들어 넣었다. 마치 하늘이 뚫린 다락처럼 아늑하지만 시원하다. 부부는 옥상에서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고기, 조개, 치즈를 구워 와인에 곁들이고, 비 오는 아침이면 빗소리를 감상하며 커피를 음미한다.
부부는 집을 짓는 동시에 주변의 고정관념을 깨부숴야 했다. ‘그렇게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조금만 살아 보면 무릎 아파서 후회한다’ ‘노후에 아파트만 한 자산은 없다’는 주변의 목소리에 단호했던 아내의 결심도 여러 번 흔들렸다.
집이 완공되면서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파트에 살면서 아쉬운 게 있듯이 협소주택도 불편한 점이 당연히 있어요. 무거운 짐을 어떻게 들고 올라올까, 춥거나 덥지 않을까, 옥상 청소는 어떻게 하지, 임대가 안 나가면 어떻게 할까 등의 고민도 수없이 많았어요. 그런데 살아 보니 괜한 걱정이더라고요. 둘이 사는 데 공간이 좁거나 답답하다는 생각은 한번 도 안 해 봤고요, 계단은 운동하는 셈 치고 오르내려요. 맞은편 30평대 아파트 한 채 값이랑 이 집 값이랑 맞먹거든요. 근데 아파트는 팔지 않는 이상 자산을 깔고 사는 거지만 저희는 팔지 않아도 매달 임대수익도 받을 수 있어요. 그 동안 너무 많은 걸 끌어안고 살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됐어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도 얻었다. 처음엔 협소주택에 반대했던 남편이 가장 많이 달라졌다. “아무리 사이가 돈독한 부부라도 아이들 키우고 나면 할 얘기가 마땅히 없고, 어색하고, 신혼처럼 깨가 쏟아지지도 않잖아요. 돌이켜보니 우리가 집에서 차 한잔 같이 했던 적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 집에 살면서 신혼 때처럼 가까워졌어요. 퇴근길에 옥상에 불이 켜졌는지 보게 되고, 빨리 집에 와서 아내와 와인 한잔 하고 싶고, 밥을 옥상에서 먹을지, 식탁에서 먹을지 의논도 하죠. 해 지는 풍경,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조차 얘깃거리가 되고, 둘이 수다를 떠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아내는 남편의 이름에서 따와 집의 이름을 ‘이이공(利怡共ㆍ다 함께 이롭고 기쁜 집)’이라 지었다. 편견에 맞서 도심에서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부부의 작은 집이 지역 내 작은 변화를 이끄는 마음을 담았다. ‘이이공’은 지난달 서울시건축사회가 주최한 ‘제5회 건축사와 함께하는 우리동네 좋은집 찾기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