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은 인정 안한 산재... 법원에서 해마다 2000건 뒤집힌다

입력
2020.10.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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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뒤집힌 '산재 판정' 1만건
근로복지공단 본부-지사 결론도 서로 달라
윤준병 "번복되는 산재 결과 체계적 관리해야"

일용직 근로자 A씨는 지난해 4월 트럭에 잔디를 싣고 전남 광양에서 순천으로 운반하다가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졌다. 앞 차량이 도로에 떨어진 타이어 파편을 보고 급정거했고, A씨는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하고 추돌한 결과였다. 업무상 재해로 볼 여지가 다분했지만, A씨가 무면허 운전자로 확인되면서 복잡해졌다.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범죄 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 등'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무면허(도로교통법 위반)를 이유로 A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유족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지난 6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회사에서도 운전면허증의 소지 여부를 특별히 확인하지 아니한 채 망인의 운전 행위를 업무의 일환으로 용인해왔다"며 "고인이 무면허 운전을 했다고 바로 업무 수행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근로복지공단 등에서 애초에 인정하지 않았던 산재 신청이 결론이 뒤집혀 산재로 인정받는 사례가 1만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재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사례가 복잡해지는 만큼, 근로복지공단이 결과가 번복되는 사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유사 사례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 심사청구 및 결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근로복지공단에 심사 청구된 산재 청구는 총 4만2,938건이다. 이 중 지사에서는 산재로 불인정했던 6,592건(15.4%)을 공단 본사는 산재로 인정했다. 같은 기관 내에서도 본부와 지사에 따라 결론이 서로 다르게 나온 셈이다.

또 같은 기간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인정 결정에 불복, 고용노동부 소속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1만5,370건 중 2,252건(14.7%)이 산재로 인정됐다. A씨 사례처럼 재심위를 거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확정된 행정소송 6,120건 중 650건(10.6%)도 산재로 인정됐다. 모두 합하면 최근 5년간 산재 심사 결론이 뒤집힌 사례만 1만건에 육박(9,494건)한다.

윤 의원은 "산재 결과가 빈번하게 번복되는 특정 업종이나 사례에 대한 자료를 근로복지공단에 요청했지만 '없다'는 답변 뿐이었다"며 "재심이나 행정소송 등으로 산재 결과가 번복된 내용은 공단과 지사가 공유해서 유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산재 피해자들이 두 번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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