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잡지 편집자로 살다가 얼마 전 완전히 일을 그만둘 때 앞으로 뭘 하며 살지 고민하지 않았다. 책을 만드는 전문성에만 의지한 세월은 무수한 경험과 약간의 지혜를 주었지만 나는 내일이 없는 빈털터리였다. 기차가 떠난 텅 빈 플랫폼에 선 기분이 아니라 책임 없는 사람의 즐거운 홀가분함. 베토벤처럼 조금 더 살아서 예술에 봉사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자랑스러웠을까?
사람들은 인생 2막을 어떻게 펼칠 거냐고 물었다. 1막을 시작한 적도 없는데 2막이라고? 나는 막 수능 시험을 본 것처럼 늘어졌다. 삶을 직접 설계한 적이 없는 것처럼, 다음 일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그러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나의 배포에는 비밀이 있었다. 나에게는 직업적인 필요로 계속 써온 글이라는 무기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엇을 쓰지? 시는 고결한 정신이 쓰는 거라서 나 같이 범속한 사람에겐 접근 불가의 장르였다. 수필은 거울 같은 마음으로 쓸 텐데 나처럼 탁한 사람이 어떻게 쓰지? 소설은 어쩐지 인간적인 범주에 속한 것 같았다. 의미 있는 진실을 보호하는 데 허구를 사용하는 세상이라면 나도 일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는 문학에 관해 겉으론 한 마디 못해도 속은 부글부글 화학실험실 같은 사람 천지였다. 과거를 소설로 쓰면 전집으로도 모자란다는 사람, 미완성된 삶이 열 광주리인 사람, 한밤이면 미처 나오지 못한 소설의 유령들이 옷장에서 꺼내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그런데 내 서랍에는 사산된 초안이나 쓰다 만 세태 소설, 묻혀버린 무용담이 없었다. 머리말도 단락도 없었다. 잡지를 만들 때는, 진정한 작가임을 증명하려면 소설을 써야 한다는 전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저널리즘은 문학 장르의 최전선을 고수하는 소설을 몰아낼 수 있다고 떠벌렸지만, 저널리스트의 시대는 오기도 전에 가버렸다.
소설을 쓰는 데는 재능 말고도 질서, 성질, 동기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엉덩이를 의자에 뭉개는 지구력이. 그런데 막상 모니터 앞에 앉기만 하면 졸렸다. 아니, 앉기도 전에 깊은 수면 상태로 돌진했다. 그 동안 들락거렸던 수면 클리닉이며 약 상자마다 굴러다니는 수면 유도제는 다 뭐였지?
나는 나를 책상 앞에 앉히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 책상 위치도 수시로 바꾸었다. 창을 등지게 배치하니 방에서 나와 책상과 벽 틈으로 꺾어 들어가기가 도대체 번거로웠다. 창문을 향해 놓았더니 눈이 너무 부셨다. 서가 앞에 바짝 두니 자꾸 뒤로 기댔다. 멋진 책상이 있으면 그래도 쓸 것 같아 철제 빈티지 책상을 사들였는데 친구들이 3층까지 나르다가 새 집 벽을 신나게 긁었다. 마지막에는 내 방문을 열자마자 의자에 앉도록 최단 거리 동선으로 책상을 옮겼다. 어떡해서든 쓰지 않으려는 핑계가 이렇게도 온당하고 집요할 줄이야.
올 여름에는 내내 미루던 장편 소설의 초고라도 쓸 작정이었다. 그 즈음에는 약속도 안 잡고 술도 안 마시며 본의 아니게 금욕적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날 밤은 세상에 아무리 싫은 게 많아도 쓰는 것보다 싫은 게 없었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은 두꺼운 장갑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 시프트 키로 어퍼스트로피를 쓰거나 스페이스를 치거나 영문용 캡스락 챙기는 것도 귀찮았다 무엇을 써도 결국 수정해야 할 실수가 되었다. 어떤 때는 여수라고 적었는데 여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사이 행정구역이 달라졌나? 바로 고치면 다시 오타가 났다. 키보드를 벌 줄 순 없었다. 항상 나쁘진 않았으니까. 맥주가 소주로 바뀌었을 땐 오히려 그 장면에 더 어울렸다.
소설을 쓰는 일은 사실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 이상의 문제와 결부돼 있었다. 나는, 만약 하나면 그냥 하나라고 말하라는 중국 속담이 자주 생각났다. ‘하나’라고 쓰면 될 걸 ‘셋 빼기 둘”이라거나, ‘0.3 더하기 0.7’로 쓰지 말라고. 간결한 표현만 옳다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예술은 진실을 위해 고용된 거짓’이라고 누가 말했지만 그건 좀 과장 같았다. ‘오디세이’나 ‘신곡’’을 보면 꼭 사실인 이야기만이 누군가의 삶을 들썩이게 만드는 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못 믿겠고 지루할 때도 많다. 게다가 거짓이 가진 급급함이나 일관성도 없다. 그렇게 정확하지도 않다. 진실은 그 자체로 명백할 뿐이니까.
어떤 점으로 글 쓰기란 재미 있는지 모른다. 처음 몇 줄은. 그러나 A4 세 장 정도 쓰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열 장이 넘어가면 거짓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진실해야 한다. 게다가 두 배는 더 명석해야 한다.
나는 너무 숨이 막혀서 내 자신을 조금 풀어주기로 했다. 글로 뭔가를 꼭 증명할 필요는 없어. 나는 과학자가 아니잖아. 무엇이 진짜고 허구인지 독자가 구분 못 할까 봐 걱정하지도 마. 나는 전문적인 소설가도 아니잖아. 고유한 언어로 찾을 수 있는 최대치의 낱말을 표현하면 족해. 단 정확하고 모순이 없어야 하겠지만.
소설가가 겪는 실질적인 문제는 언어를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장미를 묘사한다고 장미 향기가 나진 않겠지만, 어떤 단어는 쓰여지는 순간 와인 병에서 빠져나온 코르크처럼 영원히 글 밖에 머문다. 찾는 단어마다 마음에 안 드는 나에게 그것보다 과중한 부담도 없었다. 영어의 힘은 명사에서, 한국어의 힘은 형용사에서 나올 텐데 형용사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이 되었다. 이때 쓰임이 많은 부사가 앞길을 막았다. 안 그래도 수사가 많은 글에 비유는 더더구나 까다로운 문제가 되었다.
타고난 재능도 없고, 자다가 깨 발열하며 펜을 드는 고결함도 없고, 새벽의 침중한 빛 속에서 원고지 위에 엎드리는 순결함도 없이 무슨 소설을 쓴다고? 명작을 쓰지 못 하는 한 이류 소설은 다 쓰레기야. 너는 가난한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부자 톨스토이가 더 좋잖아… 소설을 쓰는 것보다 나를 책망하는 게 훨씬 쉬웠다. 글쓰기가 유일한 사회적 기술이라는 이유로 소설을 쓴다는 게 옳을까? 나는 어쩌다 극한의 수공업적 노동을 하며 살게 되었을까?
그 사이, 내 생각에, 나보다 무식한 반문맹자들도 소설을 쏟아냈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꿈만 꿀 때 그들은 앉아서 이미 다 끝냈다. 전신이 마비된 장 도미니크 보비조차 왼쪽 눈을 깜빡거리는 방법으로 소설 한 편을 다 썼다.
그날 밤 수학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칭얼댔다. “지금 너무 쓰기 싫어서 그러는데 무슨 말이든 한 마디만 해줘.” 그는 “무슨 대단한 걸 쓴다고 이 야단이야? 그렇게 쓰기 싫으면 쓰지 마” 하고 야유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데이비드 고긴스라는 미국 마라톤 선수가 있어. 철인 3종 경기 선수이기도 한데 달리는 걸 너무 싫어했대. 고긴스는 그랬어. 자기보다 앞에 있는 사람은 싫어하는 일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한 사람이라고. 싫어하는 걸 하다 보면 왜 그걸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 위대함이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
인생과 인생 자체를 쥐어짠 요약 사이를 오가며 나의 이야기로 재배열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질문의 해답을 찾았다. 소설을 쓰자고 마음만 먹던 기간의 지루함과 한 번에 이해되던 공허에 짓눌린 순간, 내 자신이 과연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또는 없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소설 자체보다 욕망과 상관 있다는 것도. 나는 일생 동안 장편 소설 하나 못 쓸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결국 인기 가수가 되지 못 하리란 걸 인정하고 기타를 팔기로 작정한 남자처럼.
나는 위대한 소설을 읽고 내 자신의 관을 짜면 족한 사람이었다. 감동이 너무 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주억거리면서. 아니면 소설에 도취된 남들 앞에서 나는 아닌 척 고독과 냉담을 연기하면서.
그래도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지진 않았다. 가끔 이야기들은 서랍 밖으로 나와 내 삶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속삭인다. "그래도 써봐. 솔직히 너도 쓰고 싶잖아." 나의 다른 마음은 비웃는다. 여기서 몇 백 살을 더 살아 969세, 무드셀라 나이가 되어도 이 말을 반복하는 뻔한 미래를.
오늘도 시작과 끝 사이가 인생으로 꽉 찬 이야기를 쓴다. 끝이 올 때까지 형태가 없는, 정확히는 현재성 말고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인생을. 어쩌면 나의 전체 이야기는 이미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애매한 재능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