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5시 백화점이 밀집한 서울 중구 을지로 1가에 운구 행렬이 등장했다. 삼베옷에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상여꾼들은 검은 천으로 둘러싼 관을 함께 나눠 들고, 동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지는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본사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에 따르면 올해만 10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숨졌고, 그 중 5명이 CJ대한통운 소속이었다. 이날 도심 한가운데 등장한 운구행렬은 숨진 5명의 택배노동자들을 상징했다. 대책위는 이날 오후 4시부터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앞에서 CJ대한통운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고(故) 김원종씨의 부친 김모(80)씨도 집회에 참석했다. 김씨는 하염없이 한 손으로 아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현수막을 쓰다듬었다. 다른 손으론 아들의 영정이 꼭 붙잡고 있었다. 김씨는 발언자로 나서 "아들이 식사도 하지 못하고 하루 14시간씩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며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며 "과로사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원종씨는 지난 8일 오후 7시30분쯤 서울 강북구에서 배송업무를 하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대책위는 김씨가 매일 오전 6시30분 출근해 오후 9시~10시쯤 퇴근했으며 하루 평균 400여건의 택배 물량을 배송한 것으로 파악했다.
대책위는 "CJ대한통운의 곳간에 쌓여가는 돈다발들은 다름 아닌 사망한 노동자들의 목숨 값이었다"며 "CJ대한통운은 돌아가신 고인들에 대한 사과나 보상은커녕 어떠한 입장표명도 없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CJ대한통운 측에 △전 국민 앞에서 사죄 △유족에 대한 보상 지급 △장시간 분류작업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아울러 대책위는 정부에도 CJ대한통운의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중대재해로 규정해 특별근로감독 실시,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공동위원회 구성 등을 촉구했다.
집회를 마친 대책위는 택배노동자의 죽음을 상징하는 영정과 관, 만장을 들고 CJ대한통운 본사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이날 서울 외에도 천안, 청주, 창원, 울산, 대구, 제주 등 지역에서도 CJ대한통운을 규탄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집회가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