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온라인 공간을 가장 뜨겁게 달군 한 문장은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라던 조정래 작가의 발언이었다. 지난 12일 조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에서 나온 이 발언을 두고 며칠간 무수한 ‘덧붙임 의견’들이 쏟아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 한다”며 비판했고, 이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조 작가가 “진중권씨는 전화 한 통 없이 아주 경박하게 무례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고 다시 반박하면서 ‘친일파’ 발언은 난타전으로 이어졌다. 여기다 조 작가가 특정 언론사들이 의도적으로 “토착왜구라고 불리는 이들”이란 주어를 빼고 모든 일본 유학생이 친일파인 것처럼 왜곡했다고 지적하면서, 이 싸움은 정파적 싸움으로 번졌다.
이날 간담회 녹음을 다시 들어봤다. 한 기자가 물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실성이 독자들이 오독하지 않도록 소설에 얼마나 투영돼 있는가? 이승만학당 이사장이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를 지적하기도 했는데”라고. 알려졌다시피 이승만학당 이사장은 뉴라이트, 식민지근대화론자라 불리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다. 이 전 교수는 조 작가를 저격해왔고, 조 작가는 그런 이 전 교수를 비판해왔다.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 질문에 조 작가는 대뜸 “이영훈은 한마디로 신종 매국노이자 민족반역자”라며 “그의 말은 다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민특위는 반드시 민족정기를 위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부활시키고”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이 발언을 듣는 순간 “아, 망했구나”는 생각부터 들었다. 등단 50주년 기념 개정판과 새 산문집 홍보를 위해 이날 간담회를 공들여 준비했을 출판사 직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게 보였다. 앞서 한 시간 가량 풀어놓은 노 작가의 문학론은 송두리째 지워진 채, 단 하나의 자극적 문장이 모든 포털 사이트를 도배할 것은 불 보듯 뻔했고, 모든 것은 예상대로였다.
물론 조 작가의 발언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이런저런 논란을 겪은 상대방에 대한 도발적 질문이라 해도 조 작가 정도 되는 '어른'이라면 좀 더 정교한, 정제된 표현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논쟁을 안다면, 다소 감정적이고 격양됐을 그 말들을 거르지 않고 쌍따옴표 안에 넣어 그대로 내는 게, 과연 현장과 사실에 충실한 태도였을까.
어쩌면 때 아닌 친일파 공방은 조회수와 댓글 양으로 기사의 질을 판단하는, 디지털 시대의 풍경 아닐까. 무수한 쌍따옴표 제목 시대, 씁쓸함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