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 폭동, 소송전...펠로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입력
2020.10.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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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으로 꾸며본 대선 후 혼란의 미국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2020 미국 대통령선거, 현재 지지율만 본다면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낙승이다. 4년 전의 이변과 충격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닐 수 있겠지만, 힐러리 패배 때와는 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괜히 트럼프인가. 지더라도 절대 그냥 물러설 그가 아니다. 결과에 불복하고, 폭력이 난무하고, 줄 잇는 소송전 속에 헌정까지 차질을 빚는 초유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현재 워싱턴 정가 주변에선 선거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상상 초월의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공화당은 공화당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면, 허무맹랑한 소설만은 아닐 수도 있다. '가상'을 전제로 대선 후 혼란의 미국을 그려봤다.

너무도 트럼프다운 '승리' 선언

투표일인 11월3일 동부시간 오후 7시. 최대 승부처인 플로리다와 펜실베이니아의 투표소 문이 닫힌다. 표준시간대가 다른 경합지역 위스콘신에선 유권자들에게 막바지 투표를 종용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애리조나 등 서부 투표소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개표. 투표가 먼저 끝난 동남부 주들은 대부분 공화당 강세지역이라, 개표 초반엔 트럼프가 앞서 나간다. 하지만 뉴욕, 뉴저지, 미시간,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바이든의 추격이 시작된다.

최대 관심지역은 역시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등 6개 경합주다. 4년 전 트럼프 이변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석권했던 이곳들을 트럼프가 싹쓸이하면서 힐러리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플로리다와 펜실베니아, 노스캐롤라이나의 현장투표 결과가 드러난다. 트럼프는 조기투표, 우편투표는 빼고 당일 현장 투표 결과만 받아들이겠다면서,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의 승리를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린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몇 달 전부터 "우편투표는 부정투표"라고 목청을 높여왔던 것이다. 이어 펜실베이니아, 아이오와, 미시간, 위스콘신에서도 승리를 선언한다. 이 모든 경합주에서는 선거일까지 우편투표는 오픈하지 않다는 룰이 있다. 트럼프는 승리에 도취해 “이 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밤”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CNN 등 주요 매체들은 조기투표와 우편투표를 포함해 바이든이 트럼프를 앞질렀다는 속보를 내보낸다. 트럼프는 자신이 이겼다고 하는데, 언론은 바이든이 이겼다고 하는 상황. 국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도그 휘슬, 로저 스톤 그리고 극우세력

이 때부터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경합주 내 주요 카운티들의 선관위 건물 주변은 이미 트럼프 열성팬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우편투표와 조기투표는 조작과 부정이라고 주장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다. 트럼프는 극우 매체를 통해 “(바이든이 이겼다는)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승리의 밤을 지키자”는 육성 메시지를 전한다. 시위는 점점 더 격해진다.

사실 이 폭동은 돌발상황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기획된, 그래서 충분히 예견됐던 그림이다. 트럼프 측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특정집단을 겨냥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도그 휘슬(dog whistleㆍ강아지용 호루라기)’ 전략을 계속 구사해왔다. 국민들에게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지지자들을 향해 주문과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달 29일 대통령 후보토론회에서 트럼프는 “우편투표의 조작과 부정을 감시하고 막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모종의 액션을 준비하라는 ‘도그 휘슬’이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이 ‘도그 휘슬’을 분 지 3일 만에 캠프에는 자원봉사자 5만여명이 몰렸으며, 이들은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 지역에 부정투표감시단으로 배치됐다. 이날 밤 트럼프 지지자들의 극렬시위는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트럼프의 도그 휘슬에 따라 치밀하게 준비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시나리오의 기획자는 트럼프의 악명 높은 책사이자 비선캠프 수장인 로저 스톤이었다.

이달 초 발생한 미시간 주지사 납치 살해 미수사건도 트럼프 측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와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를 납치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가 FBI에 체포된 조직은 극우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울버린 파수꾼(Wolverine Watchmen)'인데, 이들 조직원은 트럼프 측 부정선거감시단으로 이미 미시간과 위스콘신에 등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대선의 확장판

누구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상황, 결국 ‘2000년 대선 확장판’으로 전개된다. 공화당 조지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의 피말리는 싸움에서 승부를 가른 건 플로리다였다. 당시 두 후보는 불과 1,784표 차(부시 승리)였다. 플로리다 규정상 0.5% 차이면 자동 재검표에 들어가야 하고, 만약 플로리다의 승자가 바뀌면 대통령도 바뀌는 상황이었다. 해외 부재자 개표 결과 표차는 537표로 더 줄었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판을 뒤집은 건 로저 스톤이었다. 그는 행동대원 200명을 이끌고 재검표가 진행되던 마이애미 대드 카운티 선관위에 난입, "카스트로가 쿠바를 점령한 방식으로 좌파 고어가 부시의 표를 도둑질한다"며 폭동을 일으켰다. 초유의 혼란 상황 속에서 법원은 5대 4로 재검표 중지를 결정했고, 고어는 이의제기 없이 승복을 선언했다. 부시는 결국 국민투표가 아닌 법원 판결로 대통령이 됐는데, 로저 스톤의 폭동이 그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당시 이들은 대학생처럼 캐주얼 복장을 입고 있었다고 해서, ‘브룩스 브라더스 폭동’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2020년 대선에서 ‘브룩스 브라더스 폭동’은 되살아났다. 총기로 무장한 광적 트럼프 지지자들은 우편투표 개표 감시를 명목으로 선관위를 점령했다. 각 당이 보낸 부정선거감시단은, 설령 총기를 소지했어도 카운티 선관위가 막을 방법은 없다.

트럼프는 스스로 승리를 선언했지만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혼란의 일주일이 흐르고 우편투표, 조기투표를 포함한 최종 결과가 주별로 발표된다. 바이든의 압도적 승리. 그러나 트럼프는 우편투표 무효를 선언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주장한다. 곳곳에서 트럼프 지지자들과 투표관리인들, 그리고 바이든 쪽 감시단 간의 격렬한 충돌이 일어난다.

절차상 새 대통령이 확정되는 건 12월14일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서다. 각 주는 대통령 선거인단을 확정해 연방선관위에 보고해야 하지만, 주지사와 주의회 다수당이 다른 주에선 선거인단 보고절차가 심각한 차질을 빚는다. 2000년 대선 때는 플로리다 한 곳만 문제였지만 이번엔 13~15개 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한쪽은 진행시키기 위해, 한쪽은 중단시키기 위해, 무차별 소송전이 전개된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통령은 트럼프다. 트럼프는 모든 권한을 활용해 비상조치들을 선언한다. 새로 구성된 연방의회(117회기)는 1월 5일 문을 연다. 하원은 이번에도 민주당이 장악했다. 다시 의사봉을 쥔 낸시 펠로시 의장은 하원에서 권력교체를 관리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트럼프는 강력 반발하면서 연방 대법원이 결론을 내줄 것을 요청한다. 트럼프가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후 서둘러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한 것 역시,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1월 19일. 만약 이때까지 누가 백악관의 주인인지 결론나지 않는다면, 정말로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임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대통령을 정하지 못하는 초유의 혼란은 과연 언제 끝날 것인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미국 선거와 연방의회 전문가로 미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미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을 주도했다. 미주 최대 한인 유권자 네트워크인 한인유권자연대(KAGC)를 이끌면서 한인 투표권 옹호와 풀뿌리 민주운동을 통해 한인 권익신장에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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