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외식업체의 상당수가 최근 10년간 외국계 사모펀드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블랙홀처럼 외식업체를 빨아들이는 사모펀드의 기세가 워낙 드세다 보니, 토종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소상공인의 꿈은 프랜차이즈, 프랜차이즈의 꿈은 매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식업체 매각은 자본시장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매각을 염두에 두고 단기수익에 치중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쥐어짜기식 경영이 이어질 경우 생계형 가맹점주에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이 창업한 최초의 프랜차이즈는 1987년 등장한 한식 전문업체 '놀부'다. 놀부는 2011년 모건스탠리PE에 1,000억원 정도에 인수됐고, 이를 시작으로 국내 외식업계는 사모펀드의 매물로 떠올랐다.
치킨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도 이 무렵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1위였던 BBQ제너시스그룹은 2013년 계열사 BHC를 1,130억원에 외국계 사모펀드 로하틴그룹에 매각했다. BHC의 주인이 된 로하틴은 이후 창고43, 불소식당, 그램그램, 큰맘할매순대국밥집 등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운 뒤, 2018년 말 6,025억원에 '박현종 컨소시엄'에 BHC를 재매각했다. 5년 만에 5,000억원 가까운 돈을 번 셈이다.
치킨뿐 아니라 카페와 햄버거 브랜드도 타깃이 됐다. 2016년 토종 커피전문점 카페베네가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대만식 버블티로 유명한 '공차'는 지난해 외국계 사모펀드에 3,500억원에 매각됐다. 한국버거킹은 2012년 보고펀드에 팔린 지 3년여 만에 다시 홍콩계 사모펀드에 2,100억원에 매각됐다.
외식업 투자를 가속화하는 것은 국내 사모펀드도 마찬가지다. 맘스터치 브랜드를 보유한 해마로푸드서비스도 최근 국내 사모펀드 케이엘앤파트너스에 1,910억원에 인수됐다. 지난달 25일에는 페리카나가 최대 출자자인 사모펀드 ‘얼머스-TRI리스트럭처링 투자조합1호’가 미스터피자 운용사인 MP그룹을 150억원에 인수했다. 이처럼 토종외식업계 브랜드가 최근 수년 사이에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거나 사모펀드 손을 거쳐 주인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외식업체뿐 아니라 배달업체도 외국자본들이 접수해 외식 생태계를 바꿔놓고 있다. 국내 최대 딜리버리업체인 '배달의 민족'은 독일계 기업이 접수했고, 최근 신흥강자로 떠오른 '쿠팡이츠'도 일본계 자본이 투입됐다.
외국계 사모펀드의 프랜차이즈 인수는 국내 외식산업의 희망적 시그널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모펀드는 저평가된 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되파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전망이 좋으니 투자에 뛰어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김갑유 변호사는 “사모펀드는 창업자 개인에 좌우되던 경영방식을 체계적으로 바꿔 시장을 확대할 수 있고, 합리적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사모펀드 속성상 장기 경영보다는 수익 극대화에만 열을 올려 ‘생계형’ 가맹점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상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스타트업MBA 주임교수는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전재산을 가맹점에 쏟아 붓는 ‘생계형 점주’가 대부분인데, 가맹계약이 해지되면 손해를 보고 접어야 한다”며 “본사 경영이 악화하거나 본사와 갈등이 생겨 계약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한 가정이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수익이 발생해도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국내 소비자와 자영업자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김갑유 변호사도 “가맹점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 쥐어짜서 수익을 올린 뒤 되팔고 나간다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며 “시장원리에 따라 해결할 문제지만, 감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프랜차이즈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산업구조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가맹점주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산업이 유래한 미국에선 가맹점이 돈을 벌어야 본사도 돈을 버는 구조라서, 국내처럼 본사가 유통마진을 크게 남기지 않는다. 이상규 교수는 “사모펀드 투자가 증가하는 시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가 가맹점의 애로사항을 잘 찾아줘야 한다”며 “가맹사업 자체가 망했을 때는 본사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국 자본이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을 잠식하는 이면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투자도 원인으로 꼽힌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이 길을 열어준 외국계 사모펀드가 수익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됐다"며 "그 과정에서 가맹점주들의 고혈을 착취하고, 외식산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온갖 불공정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이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원활하게 인수합병(M&A)을 지원하고 대출도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국내 M&A 시장에서 국내 인수주체는 마땅치 않고 투자를 굉장히 주저한다"며 "국내 기업들이 투자이익을 향유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