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첫 공판. 피해자측 대리인으로 출석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30여년 전 형제복지원에 2년 8개월 간 감금됐던 강신우씨의 진정서를 소개했다.
1987년 작성된 강씨의 글에는 죄도 없이 지옥 같은 환경을 버텨야만 했던 억울함, 그럼에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던 힘없는 약자의 서러움이 물씬 묻어났다. 박 변호사가 피해자들의 사연을 소개하자, 대법원 법정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박정희 정권 때 부산에 설립된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복지’라는 명목과 달리, 장애인과 고아 등을 강제수용한 뒤 고된 노역과 학대를 일삼았던 곳이다. 공식 집계로만 500명 이상의 사람이 죽어나갔고, 그 시신은 해부용으로 병원에 팔려간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이유다. 87년에야 마침내 그 실체가 세상에 알려져 문을 닫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민주화 열망에 묻혀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가해자’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검찰은 1986년 7월~1987년 1월 울주작업장에서 벌어진 가혹행위 등을 조사해 원장 박인근씨를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횡령 혐의만 인정했을 뿐, 정작 핵심 혐의인 특수감금죄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 410호(1987년 폐지)에 따라 운영됐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20조도 무죄의 근거가 됐다. 결국 박씨의 형량은 징역 2년 6월에 불과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그는 지난 2016년 6월27일 사망했다.
검찰은 지난 2018년 11월 법원에 이 사건을 다시 다뤄 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도 ‘과거사 반성’ 대열에 합류한 가운데,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면서 비상상고를 결정한 것이다. 비상상고는 형사소송 확정 판결에 법령의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시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989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 31년만에 다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과거 판결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고경순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형법 20조에 의한 위법성 조각은 근거 조항이 합헌ㆍ합법일 경우에만 해당한다”면서 당시 법원은 내무부 훈령의 합헌ㆍ합법 여부를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무부 훈령은 부랑인을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임의로 단속할 수 있게 했다”며 “수용인들 동의나 수용기간을 정함이 없이 수용시설에 유치하도록 해 법률유보원칙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법정을 가득 메운 피해자들을 향해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고 부장은 “돌이켜보면 이 사건 수사와 재판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형제복지원 사건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특수감금 등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방법은 (당시의 잘못을) 대법원에서 명백히 바로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비상상고를 통해 ‘실효적 처벌’이 이뤄지긴 힘들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의 법령위반 사실이 인정된다 해도, 대법원은 ‘파기’를 선고할 수 있을 뿐 그 효력을 박씨에게 미치게 할 순 없다. 박씨가 이미 사망한 데다,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변경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원 판결이 파기되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잘못된 판결은 언제든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교훈을 역사의 법정에 남기는 의의도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새롭게 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에 행해진 것을 현재에 말하는 것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미래의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유해정 활동가의 글을 인용하며 이 사건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해자 측과 검찰의 의견을 토대로 조만간 비상상고 인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