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덫에 걸린 홍남기, 전세 쫓겨나고 내집 못 팔고

입력
2020.10.1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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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살고 있는 전셋집 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히면서 새 전세를 구해야 할 처지가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번에는 매도하려던 본인 소유 아파트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청구하면서 매매거래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유탄을 경제 및 부동산 정책 수장이 몸소 두 차례나 맞고 있는 셈이다.

세입자 계약갱신권 행사에 의왕집 매매 중단 위기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홍 부총리가 다주택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지난 7월 매도하기로 했던 경기 의왕 아파트 매매 거래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당초 임차계약을 종료하고 이사하기로 했던 기존 세입자가 한달 만에 입장을 바꿔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세입자는 최근 전셋값 급등으로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부총리 집을 사서 실거주하려던 매수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입자의 갱신권 행사로 입주가 불확실해지자 잔금 지급을 중단하고 홍 부총리에게 사태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약을 중개 중인 공인중개사는 "세입자가 '계약만료 1~6개월 전에만 입장을 표하면 (당초 입장을 번복하더라도)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정부 설명을 근거로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수자도 입주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라 애초 계약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현재 거주중인 서울 마포 전셋집도 내년 1월까지 비워줘야 할 처지다. 새 임대차법에 따라 홍 부총리도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으나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최근 전세난으로 인근 전셋값이 2년 전보다 2억~3억원 가량 오른데다가, 매물도 줄어 홍 부총리가 인근에 새 거주지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있으나 마나 한 정부 유권해석... 피해는 소비자 몫"

홍 부총리가 몸소 마주한 고충은 지난 8월 임대차법이 갑자기 시행되면서 이미 예고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법 적용과 해석을 놓고 현장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난무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혼란을 막기 위해 해설집과 설명자료 등으로 사례별 유권해석을 내놓았지만, 꼭 따라야 하는 강제성이 없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부총리의 의왕 아파트 매매 갈등 사례에는 정부 유권해석이 이미 내려져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1일 '임차인이 퇴거하기로 하고 임대인이 제3자와 실거주를 위한 새 계약 관계(매매 등)를 맺는 등 계약갱신이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 임대인에게 갱신거절 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즉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임대인에게 밝힌 이후 매매계약을 맺은 새 집주인은 실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유권해석일 뿐, 현장에서 강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가 사인간 거래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현장에서 생기는 충돌은 결국 법정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매계약 파기 시 생기는 위약금과 소송 장기화 등에 따른 거주 불안정 피해는 고스란히 계약 당사자들이 져야 한다. 정부가 임대차법을 밀어붙여 놓고 법 시행에 따른 소비자 피해는 나몰라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임차인과 임대인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분쟁시 큰 기준을 제시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 임대 관련 갈등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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