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국가정보원의 문서 목록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네 번째 판단이 나왔다. 앞서 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공개를 거부했던 국정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행정4-1부(부장 김재호)는 14일 임재성 변호사가 국가정보원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무효 확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임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산하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민변 베트남전TF)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변 베트남전TF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1969년 11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조사해 작성한 문서들의 목록을 공개하라”며 국정원을 상대로 처음 행정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7년. 국정원은 “공개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지만, 1ㆍ2심은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고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국정원은 “해당 목록에 성명ㆍ주민번호 등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공개할 수 없다”는 다른 사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확정 판결이 있다 하더라도 행정청이 사유를 바꾸면 또다시 비공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변 베트남전TF는 지난해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조사받은 군인들의 생년월일 내지 출생년도에 관한 정보를 제외하고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국정원은 항소했지만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국정원의 문서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ㆍ퐁넛 마을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지난 12일 베트남인 피해자 응우옌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첫 공판에서도 정부는 “’한국군에 의한 학살’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