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을 겪던 검경 수사권조정 관련법 시행령이 통과되기까지는 대통령의 질책, 여당 법사위원장의 중재, 장관직을 걸 정도로 요지부동이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극적 양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권조정 시행령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바람에 비교적 언론의 조명을 덜 받았지만 형사사법체계상 매우 큰 변화를 담고 있다. 지난해 말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후속 입법격인 이번 시행령은 66년 만에 갈등관계의 종지부를 찍고 검경을 협력관계로 전환하는 기준과 방법을 대통령령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갈등의 역사가 길고 불신의 골이 깊은 만큼 시행령 타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막후 중재를 이끌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여권 내부의 합의와 조정 과정을 따라가봤다.
올 초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개정되면서 수사권조정 이슈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검경 모두에게 적용되는 시행령 제정 과정은 사실상 지난했던 수사권조정 협상의 2라운드였다. 특히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소관법령으로 두고 있는 법무부가 8월 7일 시행령 입법예고를 하자 경찰은 검찰 개혁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밑바닥에는 검찰에 유리하게 시행령이 제정됐다는 의심이 깔려 있었다.
-검경이 대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은 형사소송법 시행령에 해당하는 수사준칙에 자신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반면 검찰은 6대 범죄를 제외한 수사권을 다 넘겼는데 형사소송법 시행령의 해석과 개정 권한까지 경찰에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추미애 장관은 전임 박상기 장관 때에 비해 원칙적 입장을 더 강하게 고수했다. 추 장관은 앞으로 기소권을 제외하면 경찰에 대한 사법통제가 수사준칙을 통해서만 가능할 텐데 이마저도 경찰에 넘어가 경찰이 자의적으로 준칙을 해석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시행령안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법무부, 행정안전부, 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마련한 것 아니었나.
“행안부는 협의 단계에서 시행령에 검찰의 사법통제 내용이 일부 들어가더라도 시행령을 법무부와 행안부 공동 소관으로 해달라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막상 ‘법무부가 행안부와 협의한다’는 내용만 들어간 시행령안이 올라오자 경찰이 집단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반발의 파장은 의외로 컸다. 경찰은 법무부의 시행령안 입법예고에 장문의 반박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특히 검찰 개혁 취지가 훼손된다는 반대 논리는 현 정권에는 치명타였다. 더구나 시행령은 국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처리되는 것이 원칙이다. 어느 한 부처가 반대하면 국무회의를 통과할 수 없는 구조다. 개정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시행령 제정도 안된 상태에서 새해를 맞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위기 의식이 여권 내에서 형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1일 청와대에서 제2차 권력기관 개혁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어떤 입장이었나.
“검경 모두 불만족스럽더라도 우선 바뀐 제도를 시행해보고 문제점은 차차 고쳐나가자는 것이었다. 특히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 하기로 정해졌으므로 이 문제는 대통령인 내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검경 모두 소관 문제로 갈등하지 말고 나를 따라달라는 말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당에서 의견 조율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9월 24일 차관회의에서는 시행령이 입법예고한 원안대로 통과됐는데.
“24일 차관회의를 넘기면 추석 연휴에 들어가고 10월은 국감 시즌이라 수사권조정 이슈가 묻힐 수 있었다. 9월을 넘기면 11월로 처리 시기가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개정법에 대한 운영 시뮬레이션 없이 곧바로 1월 1일 법 시행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9월 29일 국무회의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정해 의결하는 것을 전제로 차관회의에선 일단 시행령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고 민주당ㆍ법무부ㆍ행안부가 끝장 담판에 돌입하기로 한 것이다.”
법무부발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만큼 최종 담판은 결국 법무부가 양보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담판 타결의 분수령은 차관회의 사흘 뒤인 27일 시내 모처에서 열린 민주당 윤호중 법사위원장, 법사위원 겸 당 최고위원인 김종민 의원, 추미애 장관, 최재성 청와대 민정수석이 참여한 4자 회동이었다. 이 회동에서 합의가 도출된 것이 4가지 쟁점 사항에 대한 법무부의 양보다.
먼저 타결된 4대 쟁점 중 핵심은 국가형사사법을 총괄하는 법무부를 수사준칙의 소관 부서로 하되, 수사준칙의 해석 및 개정과 관련해서 법무부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었다. 수사준칙을 법무부ㆍ행안부 공동소관으로 둬야 한다는 경찰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수사준칙에 대한 해석을 검찰이 독점할 수 있다는 경찰의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타결이 이뤄졌다.
둘째, 검찰의 직접수사가 가능한 6대 범죄(부패범죄ㆍ경제범죄ㆍ공직자범죄ㆍ선거범죄ㆍ방위사업범죄ㆍ대형참사)에 마약범죄(경제범죄 분야)와 사이버범죄(대형참사 분야)를 포함시킨 원안에서 마약범죄는 그대로 두는 대신 사이버범죄는 삭제했다. 검찰의 마약범죄 수사는 주로 거액의 국제 거래에 대해 이뤄지는 만큼 경제 범죄에 해당할 수 있고, 해외 밀반입 마약에 대한 검찰의 수사 전문성을 고려해 존치가 결정됐다. 반면 앞으로 사이버범죄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이버범죄 수사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법무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사이버범죄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정리됐다.
셋째, 경찰에 대한 검사의 재수사 요청 요건을 강화했다. 원래 재수사요청은 90일 이내에 하도록 돼 있지만 법리위반이나 재심 요건에 해당하는 새로운 사정이 나오면 90일이 지난 후에도 가능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검사가 하잘것없는 증거를 꼬투리 잡아 재수사요청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 우려를 반영해 ‘기소할 수 있을 정도의 명백한 채증법칙 위반’ 등 예외적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넷째, 시행규칙(법무부령)에 검사의 수사 개시 대상이 되는 공직자 신분 및 금액 등 세부 기준을 두어 추가 제한함으로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반드시 필요한 경우로 대폭 축소했다.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 등 일정한 영장을 발부 받으면 수사 개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사건이더라도 계속 수사 가능한 것 아니냐는 경찰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결과를 보면 4가지 쟁점 모두 법무부가 양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추 장관이 27일 4자 회동에서 극적으로 양보하면서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특히 막판에 시행령 소관 문제가 풀리면서 논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법무부에서는 추 장관이 전임 장관과 다르게 강하게 단독 소관을 고집하자 “역시 현직 법조인 출신은 다르다”는 평이 많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시행령 소관 문제에서 추 장관이 물러선 이유는 무엇인가.
“법무부에서는 소관 법령 문제에 외부가 간섭해 들어오는 것에 근원적 거부감이 많았다. 일선 검사들도 경찰 못지 않게 반대가 심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 막판에는 시행령 소관을 총리실에 두느냐, 법무부에 두느냐를 두고 토론을 했다. 어떤 식으로든 법무부 외부 인사가 들어오는 것이니 소관 부서를 어디로 하든 무슨 의미냐는 설득이 결국 통했다.”
-추 장관이 반발하지는 않았나.
“추 장관도 토론 결론에 동의했다. 다만 법무부 분위기를 전하면서 ‘평검사들의 조직적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시행령 단독 소관을 지키지 못하면 이후 전개 상황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그 문제에서 양보를 하라고 하면 내가 직을 내놔야 한다’는 말은 했다.”
-아들의 병가 연장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추 장관이 당에 신세를 졌다. 그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다. 다만 대선 때 추 장관과 나는 당 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권력기관 개혁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추 장관도 권력기관 개혁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윤 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타결 배경에 민주당에 대한 추 장관의 부채 의식이 어느 정도 작동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비리 의혹이 제기된 양정숙ㆍ이상직ㆍ김홍걸ㆍ윤미향 의원과 추 장관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확실히 달랐다. 민주당은 지난달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이 국회 국방위에서 요청한 병가 연장 특혜 의혹과 관련한 핵심 증인 10명의 채택을 전방위로 거부했다. 또 국회 대정부질문과 각종 공식회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코너에 몰린 추 장관을 적극적으로 엄호했다.
물론 이게 처음부터 수사권조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추 장관 아들이 꾀병을 부린 것도, 규정에 없는 휴가를 쓴 것도 아닌데 야당의 공세를 못 본 척 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동료 의식이 발휘된 측면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국무총리나 민정수석이 아니라, 당에 수사권조정 시행령 협상 중재를 맡긴 것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장관직을 걸겠다던 추 장관이 물러선 것은 아들 문제로 야당의 공세가 집중돼 있던 상황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오비이락이라고 해야 하나. 추 장관이 양보한 '4자 담판' 다음 날인 9월 28일 서울동부지검은 추 장관 아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수사권조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 바로 하루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