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바꾼 베를린 당국 “소녀상 철거명령 해법 논의하자”

입력
2020.10.13 23:03
구청장, 반대집회에 예고없이 등장
"명령 중지 가처분신청으로 시간 생겨"

최근 독일 베를린 시내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를 명령한 당국이 태도를 바꿔 대화를 통해 해법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나타냈다.

슈테판 폰 다쎌 베를린 미테구(區) 구청장은 13일(현지시간) “전날 베를린 행정법원에 철거 명령 집행중지 가처분 신청이 접수돼 시간이 생겼다”면서 “조화로운 해결책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다쎌 구청장은 이날 미테구청 앞에서 열린 철거 명령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 집회에 예고 없이 등장했다.

이는 철거 명령을 자진 철회하진 않겠지만, 설치를 주관한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의 가처분 신청으로 당분간 집행이 보류된 만큼 소녀상 관련 사안을 논의해보자는 뜻이다. 다쎌 구청장은 “며칠간 소녀상과 관련된 역사를 배우게 됐다”면서 “시민 참여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이어 “지역구청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평화로운 공존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평화를 되살릴 방법을 찾아보자”고 덧붙였다.

현지 시민들과 정치권이 철거 명령에 반발하면서 결국 당국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쎌 구청장이 속한 녹색당 내부에서도 철거 명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 데다 녹색당, 좌파당과 함께 베를린 주(州)정부를 구성하는 사회민주당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날 베를린 시민 300여명은 소녀상 앞에서 철거 명령을 내린 미테구청 앞까지 약 30분간 행진하고 집회를 열어 명령 철회를 촉구했다.

철거 명령의 배경에 일본 정부의 끈질긴 로비와 압력이 있었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쎌 구청장은 “베를린에 거주하는 많은 일본 시민으로부터 소녀상에 반대하는 서한을 받았다”며 “일본 정부가 아닌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 주정부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테구는 지난해 7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이 국제적인 전쟁 피해 여성의 인권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 7월 설치를 공식 허가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제막식 이후 일본 측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7일 코리아협의회에 “14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해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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