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내가 공들여 개발한 음식인데, 여기저기서 팔면 너무 속상하겠죠? 얼마 전 SBS '골목식당'에 출현했던 포항 덮죽집을 시작으로 강원 춘천시 유명 카페에서도 프랜차이즈 회사가 자신이 만든 감자빵을 따라했다고 문제제기 하면서 음식 표절이 화두가 되고 있어요.
다행히 포항 덮죽집의 음식 메뉴를 따라했던 '덮죽덮죽'은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했고, 파리바게뜨도 문제가 된 감자빵의 판매를 중단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는데요. 얼마든지 제 2의 덮죽, 감자빵이 등장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요식업계에서 표절 논란은 요즘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몇해 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흑당버블티도 마찬가지고, 벌집 아이스크림도 어느 가게에서나 비슷하게 판매됐죠. 분명 그 음식을 처음 만든 사람은 있을텐데도요. 특정 메뉴가 인기를 끌면 다른 가게에서 우후죽순 비슷한 메뉴를 선보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음식은 저작권을 보호받기 쉽지 않다고 해요.
음식 표절을 방지하려면 해당 음식을 만드는 방법인 레시피를 저작권으로 보호해야 할텐데요. 아이디어에 해당하는 레시피는 보호받기 어려운 실정이에요.
저작권법에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물체, 물질 등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저작권법에는 문학 작품이나 음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저작물에 대해서는 설명이 돼있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아요.
레시피가 창작물이 아니어서 보호를 못 받는다면, 그 아이디어를 이용해 만든 산물인 음식 자체를 보호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요.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레시피가 저작물 보호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데, 그 결과물을 보호하는 건 논리상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레시피 자체가 보호 받을 수 없으니 결과물인 음식도 함께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해외에서도 요리나 음식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에요. 유럽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도 2018년 11월 음식 맛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어요.
네덜란드의 한 크림치즈 생산 업체는 경쟁사를 상대로 "치즈 맛을 따라했다"며 소송을 냈는데요. ECJ는 "문학이나 그림, 영화, 음악 작품과 달리 음식의 맛은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식별할 수 없다"며 "음식의 맛은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어요. 또 "음식의 맛은 음식물을 맛보는 사람, 연령, 음식에 대한 선호, 환경, 음식을 먹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장기간 노력을 기울여 개발한 음식인데, 그 노력을 보호받지 못한다면 너무 아쉬울 법 한데요. 저작권법으로 보호받긴 어렵지만,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매우 까다롭긴 하지만 특허 등록을 통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도 있는데요. 특허 등록을 하게 되면 레시피가 공개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어요. 콜라를 한 번 볼까요? 콜라는 다양한 브랜드에서 만들어내지만, 맛이 똑같지는 않아요. 코카콜라의 레시피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어서 따라 만들고 싶어도 못한다고 하죠. 항간에선 레시피가 금고 안에 보관돼 있다고도 하고, 레시피를 아는 사람이 전세계에 단 두 명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에요.
코카콜라처럼 나만의 레시피를 이른바 '영업비밀'로 정하고 레시피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비밀유지 각서를 받는 겁니다. 쉽게 말해 "이 레시피를 아무한테도 알려주면 안 된다"는 약속을 받는 거죠. 이 경우 만약 레시피가 외부에 유출됐을 때 유출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업비밀에 부쳐진 레시피라면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로 보호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해요. 물론 대기업이 아닌 영세 상인이나 중소상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도 있을 거에요. 영업비밀이라는 점도 증명을 해야하는 등 복잡한 법적 절차가 뒤따라야 하거든요. 또 레시피가 유출된 것이 아닌 어림짐작으로 추측해 음식을 만든 경우라면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하지 않을 거고요.
요식업계에선 마땅한 법적 보호 장치가 없다보니 표절 시비가 자주 일어나는데요. 오죽했으면 포항 덮죽집도, 감자빵을 파는 춘천의 카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호소를 했을까요.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음식, 요리도 누군가의 노력이 깃든 창작물인 만큼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요리연구가 A씨는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음식의 원조를 찾기 어려워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의 창작물인 것은 분명하다"며 "기준을 정해줄 수 있는 기관 등을 마련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저작권을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