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아미 의식했나…'BTS 트집' 댓글부대에 선 그은 中정부

입력
2020.10.1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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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 댓글부대, 반외세 과격 여론 주도
中 정부ㆍ관영매체는 BTS 언급 자제
세계 최대 中 내수시장 눈치볼 수밖에
FT "BTS, 편협한 中 민족주의에 희생"

중국이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발언을 왜곡하며 억지를 부릴 수 있었던 건 막강한 경제력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이 중 42%(약 6,970조원)를 내수시장에서 충당한다. 중국 소비자들의 반미 정서와 구매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글로벌 기업들은 논란이 일자 일단 BTS 관련 광고를 내리며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악명 높은 관변 '댓글부대' 우마오당 개입했나

중국의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관변 댓글부대는 '우마오당(五毛黨)'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당 5마오(0.5위안ㆍ약 85원)를 받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우마오당원은 최소 200만명에서 최대 1,00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사태의 경우 7일(현지시간) 밴플리트상을 받은 BTS의 발언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하루 이틀 사이에 급속히 퍼지면서 발생했다. 특히 일부는 중국어 번역이 '항미원조전쟁(중국의 한국전쟁 공식 명칭)'에 대한 중국인의 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으로 둔갑하면서 반향이 컸다. 외교 소식통은 13일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 저변에 퍼진 반미 감정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BTS의 수상 소감에는 악의가 없었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이를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오랜 기간 과격하게 반응하던 이전과는 다소 차이도 있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정부가 '지구전'을 강조하며 선봉에 서고 CCTV와 인민일보 등 관영매체가 나팔수를 자처하면서 결사항전 양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부는 물론 주요 관영매체들도 BTS 관련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이 전날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고 평화를 아끼며 우호를 도모하자"고 선을 그은 뒤 여론도 잦아드는 모습이다. 이번 논란을 부추겼던 국수주의 매체 환구시보도 관련 기사를 슬쩍 내렸다. 다른 소식통은 "BTS의 글로벌 영향력과 팬심을 감안하면 중국이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했다.

민감 현안 건드렸다간... "中은 글로벌 기업의 무덤"

중국이 외세에 배타적인 국민정서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 진출한 외국 업체들에게 본때를 보인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미중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애플을 비롯한 미국 제품 불매운동이 삽시간에 번졌고,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2018년 중국인을 희화화한 광고와 동양인 비하 발언으로 중국 온라인 시장에서 퇴출됐다.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도중 파리에서 벌어진 반중 인권시위로 중국 소비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미국 프로농구(NBA)도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가 지난해 곤욕을 치렀다. 휴스턴 로케츠 단장이 트위터에 홍콩 지지 글을 올리자 중국 매체들은 일제히 NBA 중계를 중단했다. 이에 해당 구단은 물론 NBA 사무국까지 나서서 중국에 고개를 숙였다. 중국이 6억명의 시청자와 5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NBA를 굴복시킨 것이다.

한국도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부인하지만 단체관광과 온라인 여행객 모집, 크루즈여행, 한국 연예인의 중국 공연 등은 4년째 중단 상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BTS의 사례에 대해 "중국에 진출한 외국 브랜드가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희생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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