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할 수 없는 말

입력
2020.10.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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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불고기, 탈춤, 태권도…. 이러한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잘 알면서도 외국어로 번역하기는 힘든 말이다. 온돌(Ondol)도 그중 하나이다. 온돌은 뜨거운 기운이 방 밑을 통과하며 방을 덥히는 장치인데, 이를 한국 사람들은 '온돌'로 부르며 다양한 형태로 누리고 있다.

온돌은 말 자체로 이미 푸근하다. 불기 없는 찬 온돌은 냉돌이고, '꽁꽁 언' '오들오들 떨고 있는'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이에 비해 '온돌'에서는 훈훈한 장면이 연상된다. 아랫목에 둘러앉은 얼굴들, 등과 허리를 지지는 식구와, 기다림에 겹겹이 싸인 누군가의 밥주발 등이 떠오른다. 온돌이 있어, 이불을 깔면 안방이고 책을 펴면 서재이다.

'온돌'을 모르는 이들에게 온돌은 어떤 것일까? 1888년 조선에 온 언더우드 부인(L. H. Underwood)은 '조선견문록'에 하룻밤에도 서너 번씩 뜨거운 방바닥을 피해 다니며 잠을 청했다고 썼다. '그런 방'은 온몸이 젖었을 때, 감기나 류머티즘을 막는 데만 좋은 방이라 했다. 지금도 유학생에게는 방바닥에 눕는 한국 사람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이다. 한국 사람을 두고, 소파를 등받이로 쓰면서 거실 바닥에 앉는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온돌방이 그리웠다는 이들이 많다. 한가로움의 표현으로 '뜨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란 말도 종종 들었다. 사실 방바닥에 배를 깔면 누울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인체 구조도 잠시 잊을 정도로 따뜻한 방바닥이 좋다는 말로 이해하려 한다. 귀갓길 밤공기가 서늘하다. 따뜻한 온돌 바닥이 생각나는 때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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