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만난 청년 7명, 하동 시골마을 귀촌해 살아보니…

입력
2020.10.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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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대구 등 청년 7명, 하동 고하리 정착
수제버거, 카페, 게스트하우스 오픈...'동네 활기'
하동에 전입신고도 마쳐... 새 귀촌 형태 주목
청년 모두 '여행' 통해 만나 귀촌 이웃으로 발전


젊은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던 경남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한 시골 마을에 전국 각지의 청년 7명이 '집단 귀촌'했다. 같이 살 집도 마련했겠다, 주소도 옮겼겠다, 하동사람 다 됐다. 어르신만 40여명 살던 이곳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7인의 귀촌 청년은 최준호(41ㆍ전주) 안효진(41ㆍ서울) 부부와 정선영(48ㆍ부산), 정상희(41ㆍ서울), 김경호(38ㆍ대구), 김준영(33ㆍ대구), 고수연(33ㆍ서울)씨다. 삶의 터전이 제각각이던 이들은 지난 7일 고하리에서 카페와 수제버거집, 게스트하우스를 여는 것으로 귀촌을 선포했다. 동네 방치된 미곡창고는 식당과 카페로, 폐가는 단독형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했다.

건물 이름에는 모두 귀촌마을 이름 '고하'가 들어 앉았다. '고하 BURGER & BBQ', '카페고하', '스테이고하리'가 그것이다. 메뉴와 로고도 하동 녹차와 하동 읍성, 고목에서 따왔다. 하동 사랑이 따로 없다.

안효진씨는 "올봄 마을 진입로에 펼쳐진 벚꽃과 주성천, 하동읍성에 반했다"며 "다른 지역도 많이 가 봤지만 귀촌의 테마와 방향성에 적합한 곳으로는 고하리 주성마을이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여행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 7명은 지난해 12월 귀촌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혼자 실행하기는 막막하던 차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올 3월 실행에 들어갔다. 경비는 나눠 내고, 옛날 살던 집의 물품도 재활용하면서 큰돈 들이지 않고 귀촌은 마무리됐다.

7명의 귀촌 청년들은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열기 직전인 5일에 주민들을 먼저 초청, 수제버거를 대접하는 등 마을 잔치를 열기도 했다. 김경호씨는 "마을잔치를 열어 젊은 이웃의 존재를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초 마을 어르신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젊다는 것들은 죄다 도시로 빠져나기기 바쁜 세상에 시골에 왜?" 어르신들은 이제 동네에 젊은이들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고마워할 정도로 기대가 남다르다.

정식 오픈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개점 시간인 오전 11시30분 이전부터 기다리는 손님도 생겨났다. 국경없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샷 덕분이다.



7인의 DNA에는 여행이 터잡고 있다. 안효진 최준호 부부는 충남 태안에서 수제버거집과 강원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경력이 있고, 정상희씨도 경북 안동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차렸다. 정선영씨도 부산에서 게스트하우스를, 김경호씨도 대구에서 게스트하우스와 대구시티투어를 운영하기도 했다. 커피와 제과에 소질이 남다른 조수연씨도 여행 도중 안효진씨와 만났다. 요리를 공부한 최준영씨는 과거 남미여행 당시 김경호씨와 만나 함께 여행을 다닌 인연이 귀촌으로 발전했다.

정선영씨는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인간적으로 돈독해졌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결정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도시 청년들이 실제로 시골에 살면 어떨까. 고수연씨는 "생활 속 불편함을 잊게 하는 뿌듯함이 있다"며 "무엇보다 이제는 일어나자마자 함께 웃을 동료가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이 꿈꾸는 귀촌은 자신만의 행복과 힐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2의 고향 하동에서 꿈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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