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언론들은 앞을 다퉈 노벨상 소식을 전한다. 의학·물리학·화학·경제학·문학·평화 각 부문의 수상자 예측, 최종 수상자의 업적, 관련 분야의 국내 동향 등을 다루는 다양한 기사들이 제공된다. 올해에는 유독 화학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여성 과학자 2인의 공동수상 그리고 논쟁적인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라는 점도 주목을 끌었지만,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예상한 후보군에 한국 과학자가 포함된 것이 크게 화제가 되어서다. 그런데 이 많은 기사들을 접하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세 가지 다른 장면이 중첩되어 떠올랐다.
첫째,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의 국회 앞 농성이다. 지난해 경북대에서는 화학관 실험실 폭파로 4명의 학생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2명은 전신 20%와 80% 화상이라는 중상을 입었는데, 산재보험조차 적용되지 않고 있다. 연구개발을 위한 노동을 수행해왔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대학원생노조는 실험실 안전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한편, 고등교육법·R&D혁신법·산재보험법 등을 개정해 학생 조교·연구원의 노동자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이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둘째, 우리나라 대학과 연구기관에 존재하는 현격한 성별 격차다. 지난 6일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노벨 화학상 후보로 거론된 현택환 교수가 재직 중인 서울대의 경우 여성 전임교원의 비율이 17.2%에 그치고 있다. 여타 국공립대와 주요 사립대의 실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임교원의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대학의 전임교원 확보율 평가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꼼수로 고안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범주를 제외하면 여성 전임교원의 비율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직급이 상승함에 따라 성비 불균형이 보다 심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셋째,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규제혁신’의 일환으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을 개정해 유전자가위 기술이 적용되는 유전자치료 연구대상을 확대하고 배아연구 허용범위도 재검토하겠다는 올 6월 정부의 발표다. 이번 화학상 공동수상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작년 3월 인간 생식세포 유전자편집의 모라토리엄을 촉구하는 서한에 동참했다. 유전자가위 같은 논쟁적 기술은 상용화와 연구개발의 본격화 이전에 사회·정치·윤리·건강·환경 영향을 검토하고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기술경쟁력 확보만을 앞세우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자가 되기 전 짧지만 자연과학 분야 연구자의 길을 걸었던 필자로서야 과학자의 업적과 공로를 치하한다는 노벨상의 취지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학원생·박사후연구원·기술지원 인력의 참여 없이 불가능한 성과를 두고 소수 엘리트 과학자만 부각시키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더욱이 학생 조교·연구원의 기본 권리도 보장되지 않고, 여성 연구자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이 여전하며, 기술경쟁력의 구호 앞에 과학과 사회가 조화를 이루는 책임 있는 연구개발의 길이 외면되는 상황은 방치하면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은 과학에도, 사회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내년 10월에는 우리 사회의 반응이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