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우는 최고 존엄… '울보' 김정은의 진화한 감성 통치

입력
2020.10.13 12: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감성의 아이콘'을 자처하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유례없는 눈물 연설로 인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자신의 국정 잘못엔 극도로 몸을 낮춰 사과하기도 한다.

눈물의 '내용'도 달라졌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된 행사에서만 눈물을 보였다. 선대에 대한 향수로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계산이었다. 최근엔 할아버지, 아버지의 폭압적 통치와 거리를 두면서 의도적으로 '감성 통치' 기법을 활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일성ㆍ김정일 떠올리며 눈물 흘리던 김정은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처음 눈물을 보인 건 2011년 12월17일 김정일 위원장의 장례식에서였다. 김 위원장은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선친의 시신을 향해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이후 열흘 가까이 이어진 장례식에서 종종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장례식 때 눈물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반 아버지와 할아버지 얘기를 할 때 울컥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2014년 12월 평양 수산사업소 소속 예술소조원들의 공연을 지켜보다가 김일성ㆍ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울먹였다. 2015년 11월 리을설 인민군 원수, 2015년 12월 김양건 당 대남비서 등 선대와 관계가 특별했던 원로들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눈물은 김 위원장이 백두혈통 계승자임을 강조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김 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공개 숙청하는 등 '피의 통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어서 '악어의 눈물'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공포 통치와 거리두기... '애민' 강조하며 눈물

김 위원장이 최근 흘린 눈물의 키워드는 '애민'이다. 김 위원장은 10일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고난을 묵묵히 견디는 인민군 장병과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3차례나 눈물을 흘렸다. 코로나19 방역과 수해 복구에 앞장선 인민군 장병들을 치하하는 대목에선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은 3중고(대북제재, 코로나19, 수해) 상황으로 경제 성과가 없어 "면목이 없다"며 자세를 낮추고, "인민들에겐 고맙다는 말만 하고 싶다"며 감정을 자극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김정은식 감성 통치'는 김일성ㆍ김정일 시대의 제왕적 통치 방식과 대비된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12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최고 존엄도 눈물 흘릴 수 있는 '인간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김일성ㆍ김정일에 기댄 백두혈통과 철권통치만으로 인민들을 붙잡을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북한 내부의 어려움을 솔직하고 감정적으로 고백하는 감성 정치로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계산된 행보"라고 분석했다.



눈물ㆍ자책ㆍ사과… 김정은식 '감성 통치'

김 위원장이 세계 지도자들을 모방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소통하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민주 국가의 지도자'를 벤치마킹한다는 얘기다. 김준형 원장은 "김 위원장은 스트롱맨(Strong man)으로 강력한 권위주의를 보이는 동시에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감성주의도 최근 들어 과시하고 있다"며 "세계 지도자들의 감성 이미지 조류를 같이 타고 있다"고 봤다.

김 위원장은 스스로를 '완전무결한 지도자'로 설정하지 않는다. 국정 실패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는 특유의 솔직 화법으로 지지를 꾀하고 있다. 올해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선 3중고에 따른 경제 실패를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무오류의 존재'인 북한 최조 존엄이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자책한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후 당 고위 간부들이 공개 반성문을 썼다. 진의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김 위원장은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등 대외 관계에서도 감성적 접근을 활용하고 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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