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미 동맹의 역사를 언급했다가 중국 네티즌들에게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 등 BTS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있던 국내 기업들이 중국 현지에서 광고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 휠라 등 일부 기업들이 BTS와 관련한 제품들을 온라인에서 삭제했다. 올해 7월부터 중국 내에서 '갤럭시S20플러스 BTS 에디션'을 판매해온 삼성전자는 관련 인터넷 페이지를 삭제한 상태고, 알리바바나 장둥닷컴 등에서 운영하던 삼성관에서도 BTS 관련 제품을 현재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도 이날 오전 현지 홈페이지에서 BTS 관련 영상과 정보를 모두 지웠다. 웨이보에서는 BTS 관련 글로벌 수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이와 관련한 정보도 사라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법인에서 자세히 말은 안 해주지만,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건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휠라의 경우 중국 웨이보 계정 내 BTS 관련 콘텐츠가 삭제됐다. 다만 휠라 본사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현지 합작법인(JV) '풀프로스펙트'의 휠라 지분율은 15%로, 중국 내 마케팅 등 결정권은 파트너사이자 지분율 85%인 '안타(ANTA) 스포츠'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휠라 관계자는 "안타 자체적으로 BTS 콘텐츠 삭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내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BTS가 이달 7일(현지시간)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밴 플리트상을 받으며 한 발언이 중국 내에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밴 플리트상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 제8군 사령관으로 참전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매해 한미관계에 공헌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는 상으로, 올해는 BTS가 그 주인공이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BTS는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의미가 남다르다"며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문제는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표현이 중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시작됐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돕다'라는 뜻의 '항미원조(抗美援朝)'로 인식하고 있는데, BTS의 이번 발언이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중국 군인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BTS 팬클럽인 '아미(ARMY)'를 탈퇴해야 한다거나, 관련 제품들을 불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BTS 발언이 '웨이보 핫이슈'에 오르는 등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BTS를 앞세워 제품을 광고하던 국내 기업들은 '몸 사리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BTS 관련 광고 삭제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사업부를 통해 상황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