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린 개미 잡아라' LG화학, 3분기 사상 최대 잠정 실적 발표

입력
2020.10.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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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익 9000억원 돌파… 2011년 1분기 이후 최대
분사 발표 후 136만주 순매도한 개인 투자자에
'기존 사업으로도 견조한 실적 가능' 메시지 전해
호실적에도 주가는 하락 전환… "고민 깊어질 듯"

LG화학이 분기 사상 최대 실적(잠정치)을 내놨다. LG화학의 잠정실적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LG화학의 배터리 부문 분사 결정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서면서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성토가 이어지자, 투자자들의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꺼내 든 카드로 보인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이외의 기존 사업만으로도 양호한 실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표출된 행보란 분석이다.

LG화학은 12일 공시한 3분기 잠정 실적에서 매출 7조5,073억원, 영업이익 9,021억원을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전년 동기 대비 158.7% 증가한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치를 초과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9,000억원대에 진입했다. 직전 최대 영업이익은 2011년 1분기에 기록한 8,313억원이었다. 매출액 역시 직전 최대 실적인 지난해 4분기 7조4,510억원을 뛰어 넘으면서 7조5,000억원대를 기록했다.

창사 이후,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LG화학의 깜짝 발표는 최근 주식시장에서의 논란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LG화학 투자자들은 지난달 17일 알려진 배터리 부문 분사 소식에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LG화학의 배터리 부문 분사 발표 이후 13 거래일 동안 약 9,000억원에 달하는 136만여주를 처분했다. 이 기간 동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LG화학의 물적 분할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청원까지 올라갔다.

LG화학은 개인 투자자들의 이탈에 대응해 이번 깜짝 실적 발표로 배터리를 제외한 기존 석유화학, 첨단소재, 바이오 등의 사업 부문에서도 투자 가치는 충분하단 부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잠정 실적에서는 사업 부문별 실적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석유화학 부문을 호실적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3분기에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배경으로 "화학 분야의 주력 제품인 아크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니트릴부타디엔(NB)라텍스, 폴리에틸렌(PE)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늘어난 위생용·포장용 플라스틱 수요 증가와 함께 꾸준한 강세를 보인 데다,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원가절감 효과까지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첨단소재 사업 역시 "배터리 양극재 출하량 증대, 편광필름 강세, 자동차 판매 회복에 따른 엔지니어링플라스틱(EP) 강세로 전분기 대비 개선된 실적을 기록했다"며 "향후 고성장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깜짝 실적에도 불구하고 LG화학 주가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였다. 지난달 29일 이후 5거래일 연속 오르던 주가가 이날은 개장부터 하락하며 3%가까운 하락세를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부문을 분사한다고 해서 LG화학의 기업 가치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건 없지만, 배터리 때문에 LG화학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기존 사업에서 호실적을 거뒀다는 점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분사와 주주가치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LG화학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화학은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분사 안건을 승인할 예정인 가운데 이에 앞선 21일엔 3분기 최종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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