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지원' 공무원 유학, 학위 못 따도 토해내는 건 고작 '99만원'

입력
2020.10.12 11:53


2015년 2월 관세청에서 7급 공무원으로 일하는 A씨는 프랑스 남부도시 툴루즈 소재 툴루즈대학으로 유학(국외위탁훈련)을 떠났다. 2년 6개월간 현지에서 교육을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항공료, 학자금, 체제비 등 정부로부터 1억5,782만원의 지원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학위를 받지 못했다. 담당부처인 인사혁신처는 A씨가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것이 불가피한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지, 아니면 출석 미달이나 성적 미달, 논문 심사 불합격 등 학업상 이유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교육훈련비 환수 규정에 따라 학자금의 일부(99만원)만 환수했다. 국민 혈세 1억5,683만원이 낭비된 셈이다.

최근 5년간 공무원 14명이 12억4,000만여원의 정부 지원을 받고 해외 유학을 떠났으나 학위 취득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상 이들로부터 환수한 금액은 지원금의 1%(1,240만여원)에 불과했다.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 받은 ‘국외위탁훈련 환수내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2017년 14명의 공무원이 ‘학위미취득’ 사유로 체제비를 환수당했다. 1인당 평균 8,800만여원이 지원됐지만, 환수액은 88만여원에 그쳤다.

이처럼 정부가 적지 않은 지원을 해줬음에도 환수비율이 낮은 것은 학위 취득을 하지 못한 경우는 체제비와 항공료 등을 제외한 ‘학자금’을 기준으로 환수금액을 정하는 규정 때문이다. ‘공무원 인재개발 업무처리 지침’의 훈련비 환수 기준은 “당초 계획한 학위 취득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지급된 학자금의 일부를 환수하되 영어권은 지급된 학자금의 20%, 비영어권은 지급된 학자금의 10%를 환수한다”고 규정돼 있다.

특히 학위를 취득하지 못해 체제비가 환수된 14명 중에는 정부 부처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것으로 알려진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무려 3명이나 포함됐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립대학인 벨그라노대학에서 유학한 기획재정부 B사무관은 9,645만여원의 지원을 받았지만 학위를 취득하지 못해 138만여원만 토해냈다. 같은 부처 C사무관도 2017년 1월~2019년 7월 4,978만여원의 지원을 받아 같은 대학에서 유학했지만 학위를 받지 못해 고작 56만여원만 환수당했다. 2017년 7월~2019년 7월 중국 화남이공대에서 유학한 D사무관도 7,024만원을 지원 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75만여원만 환수조치됐다.

이 밖에 여성가족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 관세청, 문화재청, 해양경찰청, 산림청,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각각 1명씩 나왔다.

김영배 의원은 “연간 공무원 300~400명이 국외 훈련을 떠나는 것에 비하면 학위미취득자는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수 천만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국외 훈련을 받은 공무원들의 환수 기준이 보통 ‘전체 훈련비’의 20%인 것과 비교했을 때 학위 미취득한 경우는 지나치게 환수율이 낮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훈련 보고서는 관리 중이나 학위 미취득도 구체적인 사유를 점검해보겠다”며 “훈련비 환수 문제도 제도를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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