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 비난에…울산 피해주민 "차라리 체육관 알아보자"

입력
2020.10.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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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6만원' 지침에 걸맞은 지원임에도
주민 임시숙소가 '호텔'이라 비난 쇄도
주민들 "피해에 인신공격 겹쳐 괴롭다"

울산시가 주상복합 화재 피해 주민의 대피소를 비즈니스 호텔로 지정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호캉스(호텔 휴가) 보내려는 것이냐"는 등 피해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데다 때아닌 비난 여론까지 떠안은 피해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의 호텔 지원을 사양하고 다른 거처를 알아보자"는 등 자구책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삼환 아르누보 피해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별도 자구책을 만들어 시에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날 회의는 주민들 사이에서 “시청이 이번 주 내로 숙박 지원을 끊으려 한다”는 등의 우려가 퍼지자 비상 소집됐다.

회의에서 피해 주민들은 △반드시 주거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스스로 거주지를 확보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체육관 등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해달라고 시에 요청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시가 임시 숙소 체류 기간을 이번주 중순까지만 확정하고 비판 여론을 빌미로 관련 대책 발표를 미루자, 주민들이 고육책으로 직접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지자체 지원이 없으면 당장 갈 곳이 없는 주민이 대다수라, 이날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비대위 관계자는 "비난에 상처 입은 주민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고 싶지만, 피해 보상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당장 월세 보증금조차 낼 수 없는 주민들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화재 이후 울산시가 피해자 숙소로 비즈니스 호텔을 지정했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들이 지원을 명목으로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긴다"는 식의 비판이 나왔다. 일부 언론이 이런 비판 여론을 그대로 받아쓰며 상당수 주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주민들은 난데 없는 비난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 A(55)씨는 "회사 동료까지 전화로 '호캉스 아니냐'고 쏘아붙이더라"며 "아직도 ‘가족을 잃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잠이 안 와 수면제를 먹는데 비난까지 겹치니 마음이 너무 어렵다"고 울먹였다. 다른 주민 B(39)씨는 "차라리 지원을 다 끊으라고 항변하고 싶다가도 당장 갈 곳도 없어 여론과 시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침대 하나에서 네 식구가 자는데 '호텔'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비난을 받으니 불안하고 답답하다"며 가슴을 쳤다.

실제 울산시가 숙소로 지정한 곳은 4, 5성급 고급 호텔이 아니라 원룸 구조의 3성급 비즈니스 호텔이다. 행정안전부 지침 상 지자체는 이재민 가구당 6만원씩 7일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 이 숙소는 행안부 지침에 부합하는 곳이다. 울산시는 태풍 마이삭ㆍ하이선 피해자에게도 동일 수준의 지원을 제공했다. 울산시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고, 감염병 우려가 적은 숙소 중 지원금 내의 호텔과 협약을 맺어 임시 숙소로 결정했다.

울산시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명확한 지침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피해 주민들이 이용하는 숙소는 이번 주 중순까지만 예약돼 있고, 이후 주거지는 미정이다. 시 관계자는 "피해 주민들에게 국민임대주택을 연계하는 방식 등을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형 재난으로 이재민이 발생한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 지고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 재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이재민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라며 "여론에 휘둘리기보단 명확하게 피해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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