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게임? 게임 문외한이라 ‘내가 즐기려고 하는 게임에 웬 대리?’ 했다. 가만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부정 대리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난이 쏟아졌다. 수차례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자신이 정치를 통해 이루려는 것을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 이야기다.
정의당의 변호, 처음엔 의아했다. 비례대표 후보 1번의 상징성과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 정답은 후보직 박탈이었다. 하지만 심상정 대표는 “청년 정치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뭐지? 정보기술(IT) 노동자 대변자가 그 뿐인가? 선거에 미칠 영향은 고려 안 하나?
류 의원이 같은 당 장혜영 의원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한 소식이 들렸다. 정의당은 이 일로 탈당 사태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당 입장과 무관하게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 두 의원의 태도가 단단하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기존 정치 패러다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철학과 소신에 따르는 그들에게 관심이 커졌다.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그가 “국회 권위는 양복에서 나오지 않는다” “50대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가 어두운 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측면이 있어 그 관행을 깨고 싶었다”고 했을 땐, 그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저런 방법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나’ 하는 노파심이 앞섰다. 청년 정치인이면 누구보다 더 철저히 의정 실력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를, 류 의원은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단번에 불식시켰다. 기자 출입증을 이용한 삼성전자 임원의 의원실 무단 출입, 삼성전자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밝혀내 삼성의 사과와 국회 차원의 대책을 이끌어 냈다. 이를 통해 거대 정당과 대기업 간 증인 채택을 둘러싼 ‘은밀한 거래’ 의혹의 일단을 드러내며 기성 정치의 구태를 까발렸다. 기성 정치에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실수와 실패는 청년 특권이다. 실수하지 않고 실패도 모르는 청년은 없다. 원석 같은 그들에게 가공된 보석의 미를 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청년이 두꺼운 껍질을 깨고 성장하는데 실수와 실패만큼 좋은 자양분은 없다. 기성 세대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 개입하기보다는 다만 거듦으로써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을 넓히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나는 짧은 기간 ‘류호정’이라는 청년이 기존 관습과 관행, 문화를 어떻게 바꿔 나가려 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그와 그의 행보를 기성 세대의 관념과 관점으로만 보고 판단하려는 관성의 힘이 강하게 작동함을 느꼈다. 눈높이를 청년 세대에 맞추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같은 ‘꼰대’가 그 힘듦을 감당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우리 정치엔 체계적인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이 없다. 기성 정치는 청년 정치인들을 보완재나 장식재 정도로 인식하고 취급한다. 청년 정치인이 기성 정치를 좇다 실수라도 하면 품어주고 교정해 주기보다 즉각 폐기하고 대체재 구하기에 나선다. 마치 쇼핑하듯이…. 대리 게임 논란, 박 시장 조문 거부에도 정의당은 피해를 무릅쓰고 류호정, 장혜영 두 청년 정치인을 포용하고 입장을 존중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SNS 게시 글의 표현이 물의를 빚자 즉각 청년 정치인들에게 면직 등 중징계를 내렸다. 청년 정치 육성을 위한 기성 정당의 역할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청년 정치의 완성은 기성 세대ᆞ정치의 포용과 인내가 있어야 가능하다. 실수와 실패의 용인이 성장의 결실로 보상받을 거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국감에서 그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류 의원이 고맙다. 류호정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