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같이 키운 돼지 940마리 살처분했으니… " 참담한 양돈농가

입력
2020.10.09 17:03
광역울타리 등 집중관리에도 방역망 뚫려
재입식 중단 경기북부 양돈농가 또 피눈물

"1년 동안 잘 막아왔는데...."

9일 오전 강원지역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발생한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양돈농가 주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방역당국과 경찰은 농장 입구 150여m 앞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흰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와 살처분을 위한 중장비, 트럭, 소독차 등이 농장으로 드나들 뿐이었다. 취재진이 방역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되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는 ASF가 국내 양돈농장에서 발병하기는 이번이 지난해 10월9일 이후 1년 만이다.

지난 7월 멧돼지 폐사체가 나온 곳과 250m 가량 떨어진 이 농장은 이동제한과 소독, 광역울타리, 포획틀 설치 등 집중관리를 받았으나 바이러스를 막지 못했다. 이곳에선 자식같이 키운 돼지 940마리가 모두 대형 용기(PRF)에 담겨 매몰 처분됐다. 다목리 주민 나모(51)씨는 "농장 인근 산악지대에서 폐사한 멧돼지 사체를 먹이로 한 까마귀 등 조류를 통한 접촉으로 바이러스가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당국은 화천 다목리 양돈농가 인근 10㎞ 이내에서 키우던 돼지 2,465마리를 살처분했다. 이동제한과 도축장을 일시 폐쇄하는 조치도 내렸다. 혹시 모를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서다.

이날 화천을 찾은 이중호(67) 춘천철원화천양구 축협조합장은 "지난해 경기도에서 ASF가 발생한 이후 농가는 물론 자치단체, 군부대까지 나서 지난 1년간 온 힘을 다해 바이러스 차단에 매달렸는데 허탈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조합장은 "더 이상 바이러스 확산이 안되길 바랄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파장은 경기북부 지역까지 번졌다.

ASF 확진으로 1년 넘게 기다려온 재입식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재기 의지를 불태우던 김포와 파주, 연천 등 3개 시ㆍ군 207개 농가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해 4,000마리를 살처분한 아픈 기억이 있는 연천 양돈농가 대표 박기진(40)씨는 "농가 대부분이 돼지를 다시 기르기 위해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 모아 1억원 넘는 방역과 검사비를 댔는데 하루아침에 중단돼 머리 속이 하얗다"며 "이제 가만히 앉아서 죽어나갈 판"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9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ASF가 발생한 파주 지역 농가들도 속앓이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장석철(58) 파주 한돈협회장은 "농가 모두 1년간 재입식이 막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한 채 버티고 버텨왔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겨 일손을 놓고 있다"며 "일부 농가는 당장 다음주 12일 농가에 돼지를 들여오기로 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앞서 경기도는 ASF로 키우던 돼지를 살처분한 뒤 축사를 비운 양돈 농가를 대상으로 이달부터 재입식을 추진하기로 했다. 농가들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점검을 통과하기 위해 '가축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맞춰 시설을 확충하는 등 안간힘을 썼다.

경기도 관계자는 "소득기반을 잃은 농가들에게 또 다시 위기 상황이 닥쳐 안타깝다"며 "정부 지침에 따라 재입식 시기가 결정되면 신속하게 재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화천= 박은성 기자
파주=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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