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화천군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1년만에 재발하면서 방역당국과 전국 양돈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ASF 발생 이후 1년여간 돼지를 키우지 못해 생활고를 겪어온 경기, 강원 지역 양돈농가의 시름은 더 깊어지게 됐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겸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본부장은 9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강원 화천군 상서면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ASF는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지만 돼지는 걸리면 폐사율이 100%에 달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야생 맷돼지가 아닌 양돈농가에서 ASF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10월 9일 이후 꼭 1년만이다.
특히 ASF 재발은 돼지 '재입식'을 통해 재기를 꿈꾸던 양돈농가에 청천벽력이다. 방역당국은 지난해 9월 경기 파주에서 ASF가 발병하자, 병 확산을 막기 위해 농장 248곳의 돼지 38만1,000마리를 살처분하고, 125곳의 돼지 6만6,000마리를 수매해 도축했다.
인천 강화군과 경기 파주시, 김포시 등에선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지역 내 모든 돼지를 도축 및 살처분 했다. 도축 및 살처분 총규모는 47만여 마리에 달한다.
돼지 살처분ㆍ수매 농가는 아직까지 한마리의 돼지도 사육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이 지역 양돈 농가들이 돼지 재입식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는 야생맷돼지 등에서 ASF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실제 경기와 강원북부지역에서는 지닌달까지 736여건에 달하는 ASF 야생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됐다.
생계 수단을 잃은 양돈농가들은 그사이 벼량 끝에 몰렸다. 정부가 지급한 살처분 보상금과 전국축산농가 평균 가계비(월 337만원)의 6개월치가 상한액인 한시적 생계안정자금으로는 생계를 계속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양돈을 하지 않더라도 농장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농장주의 빚으로 남았다. 재입식 시기가 늦어지면서 일부 양돈농가 주인들은 빚을 갚기 위해 남의 집 농사일을 해주거나 막노동판을 전전해야 했다.
정부도 양돈농가의 생활고를 감안해 지난달 재입식을 추진 의사를 밝혔다. 야생 맷돼지 폐사체에서 ASF가 계속 발견되고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사육 농가에서는 단 한 건도 발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입식 추진 방침에 양돈농가는 재기를 꿈꿨지만, ASF 재발병에 그 꿈은 한 달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정부는 당장은 방역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ASF가 재발한 강원 화천 농장의 돼지 전부와 인근 10㎞ 내 양돈농장 2곳의 사육 돼지 1,525마리 등 모두 2,465마리를 살처분하기로 했다. 또 이날 오전 5시부터 11일 오전 5시까지 48시간 동안 경기, 강원의 돼지농장과 도축장, 사료공장 등 축산시설에 일시 이동중지 명령도 발동했다.
이달부터 진행하기로 했던 경기, 강원 지역 살처분ㆍ수매 양돈농장 261호의 돼지 재입식 절차도 잠정 중단됐다. 아울러 경기, 강원 접경 지역 모든 양돈농장(395호)에 대해서도 일제 정밀검사를 시행하고 전화 예찰을 매일 진행할 계획이다.
또 가용한 광역방제기와 소독차량 등을 동원해 최근 야생멧돼지 발생지역 인근 도로와 하천, 축산시설에 대한 집중소독도 실시하기로 했다.
김현수 장관은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아프리카돼지열병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방역대책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며 "양돈농장과 축산 관련 시설은 기본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돼지열병이 의심될 경우에는 지체 없이 검역본부에 신고해 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