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 개천절 집회 때 등장한 '경찰 차벽'이 다시 들어섰다. 광장 주변을 차벽으로 둘러싸 광장 출입을 원천봉쇄했던 개천절 당일에 비해 완화된 수준이었지만, 경찰 단속 등으로 광장으로 가는 도보 통행이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감염 우려로 경찰이 집회를 전면 금지하면서 이날 광장 일대에선 산발적인 기자회견만 열렸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도심 집회를 막기 위해 180여개 중대, 1만1,000여명의 경찰관을 투입했다. 혹시 모를 기습 시위를 막기 위해 개천절 당시보다 동원 인원을 줄이진 않았지만, 최근 논란이 된 차벽은 세종대로 등 도로변에만 설치했다. 개천절에 서울 시내 진입로 90곳에 설치했던 검문소는 이날 57곳으로 줄였다.
특히 경찰의 단속, 통행로 차단 과정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일부 보수단체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목격됐지만 대규모 충돌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경찰관을 배치해 검문 활동을 벌이면서도 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시민들이 있을 땐 개별적으로 광장 출입을 허용하는 등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이 집회를 전면 금지하면서 이날 광장 일대에선 산발적인 1인 시위, 기자회견만 열렸다. 일부 보수단체들이 한글날 집회를 금지한 경찰의 처분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자 사전신고가 필요없는 기자회견 형태로 도심 집회를 개최한 것이다.
사랑제일교회 신도 등으로 구성된 ‘8·15 광화문 국민대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오전 서대문구 독립문 앞을 시작으로 종로구 보신각 등지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잇따라 개최했다. 비대위는 이날 오후 1시쯤 보신각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집회 금지조치가 “과도한 공권력 행사”라고 비판했다. 일부 보수단체는 ‘9대 이하’ 기준에 맞춰 차량시위도 진행했다.
경찰이 완화된 수준으로 집회 단속을 벌이긴 했지만 도로 통제 등으로 시민들이 도심을 오가는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함께 세종대왕 동상을 구경나온 조민경(45)씨는 “경찰들이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싸고 출입을 통제하는 게 낯설긴하지만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내버스 무정차 운행으로 차벽을 지나 1km 넘게 우회해 걸었다는 백모씨도 “지금 시점에 불법 집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이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화문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상점들은 연휴날인데도 제대로 장사를 하지 못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 인근 국수집 사장은 “개천절 때 국수 한 그릇 팔았는데 오늘 장사도 공쳤다”며 “한글날 연휴 시작부터 경찰들이 울타리를 치고 통행로를 막아놓는 데 누가 밥먹으러 오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음식점을 운영하는 점주도 “집회하는 쪽이든, 경찰이든 양쪽 모두 도를 넘었다”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항의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