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33층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원인은 에어컨 실외기로 추정되지만, 이를 대형 화재로 번지게 한 건 강풍에 '빌딩풍'까지 겹친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고층 건물 주변에 부는 '빌딩풍'이 소방헬기 접근을 막아 초기 진화를 방해한 한편, 불쏘시개 역할까지 했다는 분석이다.
9일 기상청에 따르면 울산에는 전날 오전 7시부터 강풍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울산을 기준으로 북쪽에 고기압, 남쪽에 저기압이 배치돼 있어 울산에서 제주 방향으로 북동풍이 불고 있다. 강풍주의보는 지상 최대풍속(10분 평균)이 초속 14m 이상 또는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20m 이상이 예상될 때 발효된다.
화재 발생 시각인 전날 오후 11시 10분, 당시 울산에서 관측된 바람 강도는 초속 5.5m 수준이었다. 초속 5m 이하를 평상시 바람 강도로 보기 때문에 '강풍'으로 부를 정도의 세기는 아니다. 다만 기상청 관계자는 "풍속을 지상에서 10m 높이에서 측정하기 때문에, 고층에서는 바람이 더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난 울산 남구의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는 지하 2층~지상 33층 규모다. 최초 화재 발생 지점이 12층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20m가 넘는 높이에서 발화된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화재가 초기에 쉽게 진압되지 못한 배경에는 강한 바람에 소방헬기가 접근하지 못했던 이유도 크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빌딩풍이 불어 화재를 더 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바람이 고층 건물을 지날 때 주변과 기압차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는 '골바람' 즉 빌딩풍이 생긴다"며 "고층에서는 지상보다 통상 2배, 최대 3배까지 바람이 세진다"고 설명했다. 지상 10m에서 초속 5m인 바람이 30층에서는 초속 10m, 15m의 강풍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권 교수에 따르면 지난달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접근할 당시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초속 24m(해양조사원 측정)이던 바람이 50층 고층 건물이 즐비한 부산 마린시티에서는 2배에 달하는 초속 47.6m로 강해졌다. 이 역시 지상에서 측정한 강도인데, 권 교수는 "고층에서는 초속 70m 이상의 더 강한 바람이 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