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길에…꽃이 스러지고 코끼리가 달아난다

입력
2020.10.10 10:00




손으로 전시장 벽을 쓸면 손길이 닿은 자리에 있던 꽃들이 소리 없이 스러지고 코끼리가 놀라 달아난다. 한 발자국 움직이면 그 아래로 물길이 갈라지고 꽃이 피어난다.

지난달 2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팀랩: 라이프’전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이다. 기존에 전시장에 여러 프로젝트로 빛을 투사해 관객의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았던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한번에 50명까지 입장 인원 제한에도 불구하고 일 평균 방문객이 5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팀랩은 2001년 일본에서 시작해 전세계 700여명의 작가, 프로그래머, 수학자, 건축가 등이 활동하며 집단 창작을 추구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 작가 9명을 포함해 총 30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미국과 유럽, 중국, 호주 등 30여개국에 전시를 수출해 누적 관람객이 2,800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을 주제로 꽃과 동물, 파도, 대지 등의 이미지를 8개의 암실에 빛으로 투사해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거대한 파도가 치는 벽면을 관객이 지나가면 물결은 더 거세지면서 요동치고, 폭포가 쏟아지는 벽면에 손을 대면 폭포의 흐름이 달라지는 식이다. 관객의 발자국을 따라 나비 떼가 몰려들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팀랩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계도,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하지만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은 존귀하며 ‘살아 있다’는 사실은 긍정하고 싶다”라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대형 전시기획사가 아닌 연예기획사 ‘문화창고’가 주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배지운 문화창고 전시담당 이사는 “장르는 다르지만 대중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대중문화와 미술이 공통점이 있다”며 “연예인의 미술 전시장 방문으로 대중들이 좀 더 쉽고 친숙하게 미술을 접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소속 배우인 전지현을 비롯 가수 엄정화, 배우 정려원 등이 전시장을 다녀갔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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