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처벌법 퇴행'에 與도 반대 목소리... 정부안 뒤집나

입력
2020.10.08 17:36
文정부 핵심 지지층 20~40대 여성 '싸늘'


“(정부 개정안은)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다.” (7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부가 도출한 낙태죄 처벌법 개정안이 여당에서도 난타당하고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6개월 만인 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이다. 여당 의원들은 "정부 개정안의 전면 재개정, 즉 낙태죄 전면 폐지"를 공언하고 나섰다.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퇴행'이 바로잡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형법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의 임신중절은 허용하되, 14~24주 사이에는 조건부로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 법 조항에 ‘낙태의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은 정부 입법예고 직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낙태죄를 비(非)범죄화하고,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한 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8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형법 개정안은 낙태죄를 오히려 공고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개정안은) 임신중단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임산부와 의사 모두를 범죄자로 처벌하도록 하는 현행 낙태죄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권 의원과 박 의원은 '낙태의 죄'를 형법에서 전부 삭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권 의원은 여기에 더해 약물적 임신중단 도입 등을 포함한 재개정안을 작성해 국회 법제실의 검토를 받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 중 발의하는 게 목표다. 정부안의 국회 심사는 법안의 최소 입법예고 시한인 40일 뒤부터 시작된다. 그 전에 권 의원의 개정안이 발의되면 정부안과 병합 심사가 가능해진다.

민주당 지도부도 정부안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허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임신 당사자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건강권 보장에는 미흡하다는 의견과 사실상 낙태죄 처벌 존속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언급했다. 대놓고 정부안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을 적극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8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재 결정의 주요 내용을 살리는 방향으로 법안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국회에서 정부안 그대로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관심이 국정감사에 쏠려 있고, 남성 의원들의 낙태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원래 희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논란이 가열될 수록 여당의 정부안 견제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낙태죄 부활'이라 해석되는 정부안은 20~40대 여성들의 민심에 그야말로 찬 물을 끼얹었다. 20~40대 여성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다.

양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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