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 초ㆍ중기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여성단체들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낙태죄를 그대로 존치하는 기만적 법안"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23개 시민단체 모임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공동행동)'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법상 낙태죄 완전 삭제를 촉구했다. 정부는 7일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임신 중기인 15~24주 이내에는 사회ㆍ경제적 사유를 고려해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단체는 우선 임신 24주 이상의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라고 정의한 개정안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은 "정부의 낙태죄 관련 입법 예고안은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보건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해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기만적 법안으로,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다"고 비판했다. 이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형법에 (낙태죄를)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으로, 그 자체로 위헌"이라며 "임신 중지를 각종 사유와 절차로 규제하고 억제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임신 중기 낙태의 경우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 역시 임신부들에게 입증 부담을 안겨 준다고 비판했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정부의 입법 예고안은 낙태를 허락받을 만한 사유의 입증을 위해 여성들이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을 전전해야 하는 요건만을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며 "14주, 24주 등 주수에 따른 제한 요건을 둔 것도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며 처벌 조항을 유지하기 위한 억지 기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활동가들은 이날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 위에 눕는 단체 퍼포먼스를 하며, 온몸으로 항의의 뜻을 드러냈다. 공동행동은 12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한편, 낙태죄 전면 폐지 요구를 담은 각계 선언문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공동행동의 기자회견이 종료된 뒤, 같은 장소에서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입법 예고안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이들은 "14주 이내 낙태와 24주 이내의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는 졸속 개악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