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합니다. 조두순 얘기는 들은게 없습니다.”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 안산시 OO구 OO파출소. 이 파출소는 2008년 등교하던 7세 초등학생을 납치해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68)이 올 12월 13일 형기(12년)를 마친 뒤 돌아와 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관할 파출소다. “특이 동향이 없다”는 관할 파출소, “동요는 없다”는 안산시의 공식 반응과 달리 ‘조두순’ 한 명의 재범행을 막기 위한 관계기관들의 대책은 총력적이고 전방위적이다. 안산시는 내년까지 폐쇄회로(CC)TV를 현재(3,600대)보다 2배 이상으로 확충할 계획이고 무도실무관 6명도 채용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조두순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했고, 경찰은 조두순의 집 근처에 초소를 설치해 24시간 순찰을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들의 불안은 과연 사라졌을까.
출소까지 두 달 이상 남아서인지 이 날 조두순이 살 곳으로 짐작되는 지역에는 치안대책 강화를 요청하는 현수막이나 집회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조두순’ 이름이 나오자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중범죄자가 이웃으로 온다는 막연한 불안, 나와 가족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실체적 공포, 상식 밖의 짧은 기간에 중범죄자를 사회로 돌려보낸 사법부에 대한 원망 등이 뒤섞여 있었다. 20년째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는 한 남성(75)은 “CCTV를 몇 대 설치하든, 무술 유단자 몇 명을 붙여놓든 모두 사후 조치에 불과하다”며 “조두순이 나오면 절해고도에라도 보냈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분통을 터드렸다. 여성들의 불안감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조두순 귀주(歸住) 예상 아파트 인근에서 자취 중인 여성 김모(28)씨는“얼마전 집 안팎을 살필 수 있는 CCTV를 설치했고 외부에서도 집의 치안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에 방범용앱을 깔았다”며 “‘이제 무엇을 더 준비 해야 하나’에 대해 친구들과 카톡을 자주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일대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이곳엔 20평대 이하 작은 집들이 많아 맞벌이 부부, 유치원생, 독거노인 등 약자들이 많이 산다”면서 “조두순을 가둬놓지 않으면 반드시 사고를 칠 것으로 예상돼 요즘은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게 일”이라고 말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나영이’로 알려짐) 가족들은 조두순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분노와 불안감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다. 사건 당시 피해자 주치의로 지금도 피해자 가족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는 신의진 연세대 정신의학과 교수 등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은 현재 이사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이다.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떠나야 한다”는 입장과 조두순이 돌아올 경우 현실적 위협 사이에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형편이 여의치 않아 피해자 가족은 이사 비용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 교수가 회장인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가 피해자 가족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억8,800만원 가량이 모였다. 신 교수는 “현재 피해자는 건강한 대학생으로 잘 지내고 있다”면서 “가족들은 사건 당시 뻔뻔하게 발뺌하던 조두순에 대한 기억이 요즘 다시 떠올라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그는“사건이 발생했던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부와 정치인들이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은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조두순의 재범 가능성은 안산 시민과 피해자 가족에게 가장 큰 관심사다. 법무부에 따르면 조두순은 법무부의 성폭력 범죄자 심리치료 프로그램 대상자 중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이미 400시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 재범 위험성은 과거의 성범죄 횟수, 비(非)면식 피해자 여부, 성적 일탈 가능성 등 23가지 척도로 평가하는데 대상자의 14%가량(2019년 기준)이 ‘고위험군’이다. 조두순은 지난 6월부터 추가로 150시간의 맞춤형 심리치료도 받고 있다.
성폭력범죄자 심리치료 프로그램 운용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긴 외국의 통계에 따르면 프로그램 이수자의 재범률은 미이수자보다 30~40% 정도 낮다. 하지만 조두순과 같은 고위험군의 재범률을 극적으로 낮추기는 쉽지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형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을 연구했던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실장은 고위험군에 대해 “환자로 치면 중증환자로 보면 된다”며 “변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과거 조두순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를 보면 딴 사람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확고한 논리를 폈다”며 “그를 변화시키기에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고 우려했다.
심리치료를 통해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이 이뤄져야 재범의 가능성이 낮아지지만 진정하게 반성할지 회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준호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이 심리치료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해도 동기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며 “가해 행동을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감, 우울감, 짜증 등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게 치료를 받으려는 진짜 동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동대상 성범죄자의 특성상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있다. 조두순 검거 직후 그를 면담했던 권일용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아동대상 성범죄자들은 낯선 곳에서 범행을 하지 않고 피해자 반경 1㎞ 안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대상 성범죄자 중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유형이 있는 만큼 이런 범행 동기를 제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성인이 된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조두순 거주지 인근의 또다른 아동이 조두순의 잠재적 범행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2010년의 경우 전체 성범죄의 재범률은 38.7%, 아동대상 성범죄의 재범률은 59.2%였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2011’)
교정당국도 조두순이 출소 후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달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사전면담 보고서(7월 28일 면담)에 따르면 조두순은 출소 후 안산에 거주하는 배우자에게 돌아갈 계획이며 “막연히 일용노동을 할 것”이라고 진술했다. 자신에 대한 사회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배우자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오는 등 부부 관계는 양호하다고 했지만, 출소 이후 구체적인 생활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불안정한 생활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법무부는 “재범 위험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전과 18범인 조두순이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면 일반인 대상 성범죄일지, 아동 대상 성범죄일지는 예단할 수 없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특이한 점은 조두순이 배우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정혜욱 위덕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논문 ‘아동성범죄의 근본원인과 대책’(2012)에서 아동대상 성범죄자의 핵심 공통점을 소아기호증(pedophilia)으로 꼽았다. 소아기호증 환자들은 이혼이나 실직 등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성인여성과 성관계를 시도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배력을 행사하기 손쉬운 아동을 대상으로 찾는 경우가 많다. 열등감은 강하지만 여성을 지배하겠다는 잠재의식 때문에 아동을 공격대상으로 삼기도 한다는 게 정 교수 분석이다. 바꿔 말하면 성인여성과 정상적 관계를 유지할 경우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한 유인이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조두순의 재범 가능성은 어떨까. 유(有)배우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나 제한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준호 교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책임감을 갖게 되기는 한다”면서도 “이성관계와 애정관계를 구축한다고 해서 태도가 진실되게 변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조두순 배우자에 대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조두순은 범죄를 저지른 12년 전에도 배우자와 사이가 좋았다”며 “두 사람의 관계가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이고 지배적인 관계일 수도 있는 만큼 배우자에 대한 심층 심리상담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윤정숙 실장은 “출소자와 면담해 보면 친밀한 관계에 있는 배우자, 동거인이 있으면 확실히 충동이 많이 억제되기는 한다”면서 “조두순의 부인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으로서 옥바라지를 해주고 있는지는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성공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해도 조두순의 재범 가능성을 낮추려면 출소 후 심리치료는 필수다. 윤정숙 실장은 “조두순처럼 성적 일탈성에 문제가 있는 수형자에게 그런 성향을 완벽히 제거하기에는 500시간 치료로는 부족하다”며 “충분한 변화가 이뤄지려면 수감시설 안은 물론 밖에서도 심리치료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조두순 출소 후에도 맞춤형 심리치료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러나 조두순이 이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게 문제다. 현행 전자장치 부착법은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은 성범죄자가 500시간 이내 특별범죄 치료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프로그램 이수 후 교육기간을 연장하거나 추가 이수 조치를 취할 근거 규정이 없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에게 특정범죄치료 프로그램 이수의무를 부과한 법안(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통과 등 보완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