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치며 서구 근대도시가 형성되었다. 가내수공업이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형으로 바뀌면서 많은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교육시설, 주택, 시장 등 사회기반시설들이 필요하였고 이 과정 중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들과 실제 거주하는 시민들 간에는 많은 갈등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인구 증가는 도시를 환경적 오염과 계층 간 갈등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4평도 채 안되는 공간에서 4가족이 살아야 하는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 삶을 위한 주거권이 요구되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소의 에밀과 같은 교육이론이나 홉스의 사회계약설과 같은 유명 저서들은 이러한 시대환경에 따라 나타난 필연적인 명저였다고 할 수 있다.
내적 도시의 갈등양상을 부의 축적으로 해결하려 한 서구사회의 집권자들은 산업화에 의한 자본력과 기술적 전쟁능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야망사업을 펼쳤다. 항해술을 발전시켜 타문명의 사회로 나아가며 소위 제국주의의 각축장으로 서로 경쟁하듯 확장해 나갔다. 우리가 잘 아는 지금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오 들은 서부개척시대를 거치면서 수천만 명이 학살당했고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소수 부족만이 보호받는 모양으로 전락했다. 지구온난화로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대다수의 아프리카 대륙도 서구경쟁의 각축장이었다. 그뿐인가?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도 유럽인들의 식민국가로 오랫동안 수탈의 삶을 살아 왔다. 그들은 이와 같은 패권주의적인 폭력 방식을 서로 경쟁하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사자이기도 했다. 서구 사회의 이런 무한 질주하는 열차와 같은 행보는 계속 이어져 현재까지도 세계 패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힘이 지배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이러한 서구사회를 합리적이며 선진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며 배우고 본받으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최근 우리사회에는 해외의 앞선 지식을 배우고 돌아와 사회의 중요한 요직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구가 일궈온 합리적이라는 사회체계의 바탕에는 욕망과 폭력과 슬픈 역사가 희생양처럼 숨겨져 있었음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만 현재 가장 잘 사는 삶이기에 옳은 것이며 그들을 따라 본받아 살아가야 마땅하다는 관념이 가득한 듯하다.
지배와 욕망의 폭력이 이룩한 서구사회의 합리주의적인 도시와 문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사회문화적 관점에 어떤 제어장치를 두는 시선은 발견하기 어렵다. 우리에겐 사실 그들의 가치 못지않은 미덕들이 많이 있었다. 관념론과 유물론을 대응할 수 있는 주리론과 주기론이 있었고 근대이론을 대변할 실학사상이 있었지만 옛사람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삶의 모습으로 돌이켜 본다면 서구식 줄을 서는 문화는 우리의 것과 달랐다. 우리는 마을의 어르신에게 순서를 양보하였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어울려 대소사를 함께 논의했었다. 오늘날처럼 경제적, 계급적 갈등이 극심한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참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미덕과 관습들이 옛것 또는 낡은 것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해 왔다.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 정쟁과 갈등이 많은 요즘 오래된 조상들의 지혜가 맑은 가을 하늘처럼 가슴에 촉촉이 내려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