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 '아동 성범죄' 반세기 넘게 감추고 비호한 英 성공회

입력
2020.10.07 09:12
'아동성학대 독립조사위' 보고서 발표
1940년대 이후 성직자 390명 유죄
"피해자보다 가해자, 도덕보다 명성 보호"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교회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직자의 아동 성학대를 방관한 사실들을 조사한 보고서가 발표돼 파장을 일으켰다. 종교가 도덕적 목적보다는 명성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영국 BBC방송과 일간 가디언 등은 6일(현지시간) 아동성학대독립조사위원회(IICSA)가 성공회의 성직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성학대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 실패를 꼬집는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전했다. IICSA는 2015년 지역당국과 종교기관, 군대, 공공기관 등에서 제기된 성학대 주장을 조사하기 위해 설립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0년대 이후 지난 2018년까지 성공회 내 성직자와 종교 지도자 390명이 아동이나 취약한 상태의 성인에 대한 성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성공회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를 숨겨주는 방패가 됐다. 성학대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을 성직자로 임명하거나 성직자의 성학대 가해 의혹을 무시하는 식이다. 2018년 한 해에만 성학대가 우려된다는 보고가 2,500여건 교구에 보고됐는데 이중 4분의 1만이 사법당국에 보고됐다.

심각한 의혹 제기에도 성공회가 가해자 편을 든 사건으로는 1999년 고 로버트 와딩턴 사건은 대표적 사례다. 맨체스터 대성당의 주임사제 자리를 유지한 와딩턴은 1960년대와 1980년대에 각각 제자 한 명과 소년 성가대원 한 명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당시 요크 대주교는 "그럴리 없다"며 묵살했다.

알렉시스 제이 위원장은 "수십년간 이어진 성공회의 실패로 가해자는 숨었고 피해자는 (고통을) 극복할 수 없는 '(신상) 공개'라는 벽에 직면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아동 성학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직자를 추방 규정 도입 등을 권고했다. 방송은 "교회의 명시적인 도덕적 목적은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 위한 것인데, 이 보고서는 그것이 실패했고 여전히 실패 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성공회는 이날 성명에서 "보고서가 충격적"이라면서 "사과만으로 희생자에 가해진 학대 영향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사과를 하게 만든 사건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보고서의 권고사항을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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